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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 '여성'을 버렸다 … 난소·유방암 유전자의 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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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모(48·여)씨는 올해 초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에서 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가 59세에 난소암으로 숨졌고 언니가 51세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더니 의사가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그 결과 난소암·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BRCA)가 있는 것으로 나와 암 예방 차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대학 교직원 황모(33·여)씨도 BRCA 검사를 받을 생각이다. 황씨의 어머니는 2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떴고 본인도 2년 전 난소에 혹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엔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40)가 유방에 이어 난소(나팔관 포함) 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한 뒤 유전자 검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졸리가 여성성을 상징하는 두 부위를 절제했다고 하니 놀랍다”며 “실제 이런 수술의 효과가 있는 건지, 이런 수술을 받아야 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졸리의 난소 절제술은 국내에서 이미 난소암의 예방법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2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12월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2013년 3명, 지난해 27명이 수술을 받았다. 국립암센터 임명철 전문의는 “국내에선 예방적 난소 절제 수술은 더러 시행하고, 유방 절제 수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졸리가 난소까지 제거한 이유는 그의 가계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외할머니는 난소암으로 45세에 숨졌고, 어머니는 49세에 난소암 진단을 받아 2007년 57세에 세상을 떴다. 이모도 2013년 유방암으로 61세에 사망했다. 졸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의사의 권고대로 2013년 양쪽 유방을, 2주 전에는 난소 제거를 선택했다.

 난소암과 유방암을 야기하는 유전자는 BRCA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평생 난소암에 걸릴 확률(위험)이 30~40%(일반인은 1.5%), 유방암 확률이 50~80%(일반인은 10%)다. 졸리의 주치의들은 그의 유방암 확률이 87%, 난소암은 50%라고 추정했다.

 이처럼 BRCA 유전자는 부모한테서 물려받는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박정열 교수는 “난소암의 5%는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가족 중에 유방암이나 난소암 환자가 있으면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임 전문의는 “부모의 BRCA 유전자는 자녀의 50%에게 유전되며 아들도 예외가 아니다”며 “아들에게 병은 발생하지 않지만 유전자가 후세대에게 유전된다”고 말했다. 난소암은 발생률이 인구 10만 명당 8.6명(유방암은 65.7명, 2012년 여성 기준)으로 그리 높지는 않다. 다만 5년 생존율은 61.9%(유방암은 91.3%)로 낮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김병기 교수는 “난소암은 조기 진단이 잘 안 돼 상당히 진행돼서 발견된다. 3, 4기에서 발견되면 80%가 숨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BRCA 유전자가 있을 경우 수술의 이득과 위험을 따져 수술 여부를 결정할 것을 권한다. 세브란스병원 유전성 유방암·난소암 클리닉 남은지 교수는 “졸리가 이번에 난소를 제거함으로써 암에 걸릴 위험을 95~99% 줄였다”며 “유전적으로 BRCA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난소암을 예방하려면 난소 제거 수술을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난소를 절제하면 유방암 위험을 50%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수술 외 다른 치료법도 있다. 먹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임 전문의는 “피임약을 5년 복용하면 난소암 위험을 60%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골반초음파 검사와 CA125 검사를 6개월마다 하는 게 좋다. 난소를 제거하면 폐경이 오고 출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정용욱 교수는 “난소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을 공급한다”며 “이를 제거하면 노화가 빨라지고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증가하며 뼈가 약해져 골다공증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난소 제거 수술 수가는 수술비가 21만1200원, 재료비가 33만9000원이며 환자는 이의 20%를 부담한다. BRCA 검사는 유방암·난소암 진단을 받고 2촌 이내에 그런 암 환자가 있을 경우 검사비(53만3740원)에 건보가 적용된다. 이 경우 5%만 부담한다. 암 환자가 아닌 사람이 검사하면 건보가 안 돼 100만~200만원이 든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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