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거인’ vs ‘아시아의 마키아벨리’ … 중국과 서방, 리콴유 대조된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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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엽 기자

‘세계의 거인’ vs ‘아시아의 마키아벨리’.

지난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는 서방과 중국에서 대조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방 언론은 싱가포르를 1인당 국민소득 세계 8위(5만 6113달러) 국가로 성장시킨 공의 이면에 권위주의적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지적한다. 리 전 총리의 31년 총리 재임은 쿠바의 피텔 카스트로(49년)나 북한 김일성(46년) 등에 이어 현대 역사상 10위권의 장기 집권 기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자 사설을 통해 “정치 지도자의 업적은 경제적 성취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영국 가디언은 “인권단체는 ‘그가 친인척에 의한 권력 독점, 언론에 대한 통제, 재판도 없이 정적을 감옥에 보내는 등 철권통치를 펼쳤다’고 비판한다”고 지적했고, CNN은 “싱가포르 젊은 세대는 리 전 총리의 왕조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한다”고 보도했다.

서방 언론은 리 전 총리 사후 싱가포르가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비싼 물가, 극심한 빈부 격차, 노조 탄압, 외국인 노동자 차별 같은 문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국가로 꼽혔다.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0.478(2013년)로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3년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의 ‘싱가포르 폭동’은 싱가포르의 그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NYT는 ‘리콴유가 만든 싱가포르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싱가포르 국민들은 사회·정치·경제 등 분야에서 더 많은 변화를 원한다”며 “싱가포르에 변화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방의 비판적 시각과 달리 중국은 리 전 총리의 높게 평가하며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리 전 총리 타계 후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는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고 애도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조전에 “리 전 총리의 중국 개혁ㆍ개방에 대한 공헌은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이례적으로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4명이 별도의 조전을 보내며 경의를 표할 정도다.

신화통신도 리 전 총리의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언급하며 “서구의 비판은 리콴유의 정치적 이상이나 가치를 흔들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질서를 바로 세우는 권력 속에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풍부함을 갖출 수 있다”며 “아시아 가치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에 경의를 표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 “중국의 평가와 달리 리 전 총리는 대만과 협력하고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전략적이고 복잡한 모습을 보였다”며 “독립적인 사법제도나 청렴한 정부 등도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와는 차별된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타계 후 싱가포르 국민들은 청렴한 공직사회, 안전한 거리, 낮은 세금 등을 칭찬하며 리 전 총리를 애도하고 있다.

◇대만 총통 비밀 조문 논란=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24일 싱가포르 총리 관저를 비밀리에 방문해 리 전 총리를 조문했다고 홍콩 명보가 25일 보도했다. 마 총통은 24일 전용기로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총리 관저를 찾아 30분가량 조문했다는 것이다. 마 총통의 ‘개인 조문’은 공항으로 귀국하는 모습이 기자에게 포착되면서 일반에 공개됐다. 마오즈궈(毛治國)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입법원(국회) 질의에서 “(대만과 수교하지 않은) 싱가포르의 요청을 존중했다”고 답변했다. 리셴룽(李顯龍) 싱가포르 총리의 요청으로 가족 추모기간에 조문하게 됐다는 것이다. 뉴쩌쉰(?則勳) 대만문화대 교수는 “양안 정상이 장례식장에서 마주칠 경우 국제 언론의 과도한 주목을 받게 된다”며 “마 총통이 이는 싱가포르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경진·정원엽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