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 못본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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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찰이 실종된 장애인 중학생의 시신을 실종 당일 발견해놓고도 자체 공조가 이뤄지지 않아 48일 지난 뒤에야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폐성 언어장애로 정신지체 2급 장애 진단을 받은 金모(16)군은 지난달 3일 학교 친구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실종됐다.

金군은 심한 자폐증으로 가족 이외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였다.

金군의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아들을 찾아나섰다.

金군의 행방이 알려진 것은 지난 20일.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49)대표가 경기도 분당에서 金군의 사진이 담긴 전단을 나눠주던 중 한 경찰관이 '金군의 모습이 파출소 게시판에 있는 변사자와 비슷하다'고 확인해준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金군은 실종 당일인 3일 오후 10시쯤 평택시 진부면 경부선 하행선 철길에서 화물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 사고를 처리한 경기도 평택경찰서는 신원확인을 위해 전단을 각 파출소에 뿌렸다.

비슷한 시기에 실종신고를 받은 서울 마포경찰서도 金군을 찾는 전단을 배포했다.

金군의 아버지(46)가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평택 서정파출소 게시판에는 金군의 신원수배 전단과 마포서.가족들이 배포한 전단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 간 공조체제가 부실하고 미아전담 수사인력이 없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해명했다.

22일 오후 경기도 벽제 화장장에서 아들을 보낸 아버지(46)는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는 자식의 행방을 몰라 부모의 마음을 속태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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