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시대공감] 야당이 진정 집권할 뜻 있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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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39면

청와대 3자 회동 결과에 깜짝 놀랐다. 17일 오후 제목부터 날아든 모바일 속보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 인식 같이해’. 아니 이렇게 합의했어? 궁금한 마음에 기사를 찾아봤다. 그 시간까지 자세히 설명한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잇따라 속보가 날아들었다. ‘문 대표, 합의 시한 가볍게 여기지 않아’. 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마음을 열었구나. 이 기회에 수권능력을 보여주려고 작정을 했구나.

그러나 그건 잠깐 동안의 행복한 착각이었다. 국민연금을 개혁한 게 노무현 정부 아닌가. 그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만들었다. 관료 조직과 말싸움까지 벌였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말았지. 그는 최근 새누리당이 내놓은 안이 개혁적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으니 그 역시 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을까. 막연히 이런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문 대표는 정부안부터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면 야당안도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안은 사실상 나와 있다. 지난 2월5일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국민대타협기구에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공식 정부안’을 내놓으라는 데 있다. 이근면 안은 공무원노조의 반발로 철회됐다. 2006년 정부와 공무원노조의 단체협상으로 연금개혁안은 반드시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해놓은 때문이다. 그러니 노조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공식 정부안은 나올 수 없다. 결국 문 대표의 말은 ‘공무원노조의 합의를 받아오라. 그러면 야당 안도 내놓고 이야기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공무원노조와 합의할 수 있다면 국민대타협기구를 만들지 않아도 됐다. 국회 논의도 형식적 절차만 남게 된다. 국민대타협기구는 80여일을 허비했다. 내주 목요일 문을 닫는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한이 5월2일. 이제와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동의를 얻은 뒤에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수순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야당이 판을 깨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연금 개혁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어 놓고 공무원들에게 고통을 나누자고 하는 것”이라며 “합의를 이끌어나가고 설득하는 것도 여당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여야 간 의견이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왜 연금개혁을 해야 하는지 공감대는 있는 걸까. 대개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게 공감대였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하향평준화하면 실질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와서 국민연금까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되돌리자는 것인가.

공무원연금을 손질해야 한다는 건 이미 오래된 공감대다. 공적연금 중 가장 먼저 적자를 낸 것이 공무원연금이다. 1993년 398억원의 적자가 났다. 이때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모두 손을 댔다. 그러나 그때마다 흉내만 냈다. 공무원의 단결된 표가 무서웠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연금 적자는 국고에서 메워주도록 하는 조항까지 집어넣었다. 이제 연금이 고갈돼도 공무원이 답답할 이유가 없게 됐다.

지금도 국고에서 공무원연금 보전금이 하루 100억원 꼴로 나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15조원, 앞으로 10년간 55조원을 넣어야 한다고 한다. 2030년이면 1년에 15조원, 2040년에는 20조원을 국고에서 메워줘야 한다. 어느 한 정부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이미 20년이 넘게 누적돼온 정책 예측 실패다.

물론 연금 문제를 다루면서 재정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고령화와 노인빈곤률의 상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 자살률, 청렴한 공직 생활에 대한 보상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소득 대체율을 50%, 60%, 아니 80% 이상 보장하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게 장기 목표가 돼야 한다. 다만 지속 가능한 범위에서다. 지금은 당장 터질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일이 화급하다. 지불불능 상태에서 소득대체율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시간을 끌면 또 다음 정부로 폭탄을 넘기게 될지 모른다. 차기정부도 또 그 다음 정부로 폭탄을 넘길 수 있다. 55조원을 쏟아 부으면 10년은 버틸 수 있다. 언제까지 그렇게 넘길 건가. 오히려 야당일 때 함께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문 대표가 집권 이후까지 생각한다면 서둘러야 할 일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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