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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배려, 디자인으로 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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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30면

지난 한해 동안 850만 명이 찾았다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단장 정용빈)가 3월 21일 첫 돌을 맞아 준비한 ‘함께 36.5 디자인’전은 한마디로 거시적이다. 여느 전시처럼 전시물의 특징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름’과 ‘배려’라는 추상적 테마를 큰 그림으로 풀어내는데 주력했다. 은병수 전시감독(은카운슬 대표)은 “동대문의 다른 말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남을 나처럼 생각하고 인을 실천한다는 의미”라며 “신체적 장애를 배려하고, 환경을 고려하며,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지속가능한 ‘어진 디자인’을 추구했다”고 전시의도를 설명했다.

DDP 1주년 기념전 ‘함께 36.5 디자인’ 3월 17일~5월 24일 지하 2층 배움터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산업용 전선을 둘둘 감아두는 일종의 ‘실패’인 보빈(bobbin)이 거대한 설치물로, 또 테이블이 되어 관람객을 맞는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상징인 각종 실패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전시장은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돼 있다. 처음 관람객이 보게 되는 것은 ‘공존’ 코너. 성수동 구두 장인들이 만든 신발틀 250개가 무더기로 쌓여있다. 크기나 모양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웅변이다.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좌우로 단추, 가위 등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테이블도 마찬가지다. 가위만 하더라도 미니가위, 철사 자르는 가위, 포도알 따는 가위부터 엿장수용 가위까지 다양하다. 같은 가위라도 용도에 따라 모양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다름이야말로 삶의 재미일터다.

두 번째 섹션의 테마는 ‘공생’이다. “누구나 심장은 36.5도”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울맹아학교 6학년 학생들을 위한 3D 졸업앨범이다. 보이지 않는 학생들에게 사진으로 만든 앨범 대신 3D 프린터로 친구들의 얼굴을 출력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하자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왠지 짠하다. 17일 현장 기자 간담회에서는 8명의 두상을 만져볼 수 있었는데, 전시 기간 중 3D 프린터를 이용해 계속 만들 것이라는 게 은 감독의 설명이다.

식수난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친환경 디자인 제품도 확 다가왔다. 빗물을 모아 저수지를 만드는 ‘워터맨 오아시스’, 모아진 흙탕물을 정수해 식수로 만드는 ‘바이오 샌드필터’,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생생한 사례였다.

노숙자들이 함께 한 자전거 리메이크 프로젝트는 자전거를 해체해 다양한 아이디어 작품으로 탄생시킨 자리다. 체인을 돌리면 불이 들어오는 램프, 자전거 핸들을 이용한 옷걸이, 안장을 나란히 모아 만든 미니 벤치 등이 시선을 끌었다.

세 번째 섹션은 ‘공진’이다. 말 그대로 “함께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편리하게 이용하는 유모차, 보행기, 자전거, 최신형 전기 2륜차 등이 큰 원을 따라 전시돼 있다. 특히 장애인을 위한 보조 기구들도 대거 등장했다. 스키를 탈 수 있는 휠체어, 육상용 의족, 어린이용 보행 보조장치, 안면근육 작동 휠체어 등은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달음을 준다.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전시뿐만이 아니다. 20일부터 25일까지 DDP 특설무대에서는 서울패션위크가 열린다. 대한민국의 중견 및 신예 디자이너들이 재주를 뽐내는 자리다. 눈에 확 띄는 복장의 패션 피플들이 DDP 주위를 가득 메우는 모습은 패션위크가 주는 진귀한 보너스.

또 20일부터 29일까지는 ‘2015 DDP 디자인 열흘장’이 열린다. 디자인존·푸드존·공연존·사회경제존으로 나눠 국내외 디자인상품, 아트·공예·핸드메이드 상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입장료 성인 8000원.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D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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