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당한 '아랍의 봄' 모범국 … 서구식 민주화에 경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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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국립 바르도박물관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무장괴한 총격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튀니스 AP=뉴시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는 2010년 ‘아랍의 봄’의 발화점이었다. 이웃 나라들에겐 그러나 ‘봄’이 곧 ‘겨울’로 이어졌다. 튀니지만은 비교적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아랍 민주화의 유일한 ‘신호등’이 됐다.

 18일 낮, 그런 튀니지가 공격을 받았다. 수도인 튀니스 도심의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있는 바르도 국립박물관이었다.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무장하고 군복을 입은 무장 괴한들이 정문 앞에서 버스에서 내리던 관람객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이들은 곧바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서도 총격을 멈추지 않았다.

 세 시간여 만에 경찰이 현장을 진압했을 때 무장 괴한 2명을 포함, 총 23명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중 최소 18명이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특히 일본(5명)·이탈리아(4명) 출신이 많았다. 경비원 1명도 숨졌다. 나머지 두 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무장괴한 중 두 명은 현장에서 사살됐지만 다른 두세 명은 도주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튀니지로선 2002년 21명의 사망자를 낸 남부 휴양지 제르바의 유대인 회당 차량 폭탄테러 이래 최악의 참사다.

 튀니지에선 상대적으로 관광객을 겨냥한 테러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관광이 주요 산업이기도 했다. 이날 의회에선 반테러법을 논의 중이었다. 이 때문에 괴한들이 의회를 공격하려다 경비가 삼엄하자 대신 박물관을 공격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튀니지는 아랍의 봄에서 유일한 성공 스토리”라며 “부상하는 민주주의와 관광산업이란 튀니지의 양대 상징을 향한 테러로 튀니지가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하비브 에시 튀니지 총리는 프랑스 RTL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2명의 범인은 야신 라비디와 하템 카츠나위”라며 “라비디는 정보당국의 요주의 인물이었으나 무장 그룹과의 연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장에 있던 한 프랑스 관광객은 프랑스 TV와의 인터뷰에서 “밖에서 총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쓰러진 게 보였다”며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란 뜻의 아랍어)란 외침도 들렸다”고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는 최근 프랑스 ‘묻지마 테러’ 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 자들이 외친 구호다.

 실제 IS 측은 트위터를 통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 IS 지지자는 “튀니지가 이슬람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날 테러는 튀니지에 대한 테러 공세의 시작일 뿐”이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다에시(IS의 아랍식 표기)가 또다시 지중해 연안 국가와 국민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어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맞서려는 우리의 협력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든다”며 “EU는 튀니지의 테러와의 전쟁과 안보 부문 개혁을 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튀니지의 여건이 썩 좋진 않다. 사실상 내전 상태이며, 극단주의 세력들의 온상이 된 알제리·리비아의 틈바구니에 있다. 여기에 지속적인 경제난으로 젊은이들의 반감도 상당하다. IS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에겐 ‘좋은 토양’인 셈이다. 실제 이라크·시리아로 떠난 튀니지인이 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은 테러 직후 “말도 안 되는 테러론 우리를 겁먹게 할 수 없다”며 “민주주의는 이기고 (테러로부터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민들도 이날 박물관 앞에서 촛불과 튀니지 깃발을 흔들었다. 튀니지가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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