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 연준이 벌어준 골든타임마저 놓쳐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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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선택은 절묘했다. 금리 인상을 말했지만 말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언제든 금리를 올릴 수 있게 하되 당분간은 올리지 않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냈다. 어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0~0.25%인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되 그동안 사용해 온 ‘인내심’이란 표현을 발표문에서 삭제했다. 그간 시장에선 연준 발표문에서 ‘(금리 인상에 앞서) 인내심을 발휘(하겠다)’라는 문구가 빠지면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연준은 다음달에는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물가상승률이 2%에 접근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금리를 올리겠다면서도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1.0~1.6%에서 0.6~0.8%로 크게 낮췄다. 이르면 다음번 정례회의가 열리는 6월에도 금리를 올릴 수 있지만 그보다는 늦어질 것이란 의미다. 속도와 폭도 완만할 가능성이 크다. 수퍼 달러와 유가 하락으로 미국 물가 상승세가 더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으로선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미국 금리 인상이 상반기로 앞당겨졌다면 지난주 금리 인하를 단행한 한은의 선택이 훨씬 어려워질 수 있었다. 금리 인하 효과를 보기도 전에 되레 인상론이 고개를 들면서 정책 혼선과 시장 엇박자로 경제가 더 꼬일 뻔했다. 한은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비하되 경기 부양 효과가 확실해질 때까지 추가 금리 인하 등의 정책 수단을 조심스럽게 검토해봐야 한다.

 정부와 정책 당국도 미국 연준이 벌어준 시간을 귀하게 써야 한다. 경제 살리기 하나만 내걸고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이나 규제 완화를 확실히 마무리해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최근 급증한 가계부채의 부담을 확 줄여 다가올 미국 금리 인상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내성이 강하다고는 하나 다른 신흥국을 거쳐 경제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 약한 고리를 끊어내고 기초체력을 단단히 다져놓아야 위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연준이 벌어준 골든타임, 이것마저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