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이보다 무자비할 순 없다, 괴물이 된 권력 '리바이어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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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바이어던’의 한 장면. 거대한 고래 뼈가 성경의 괴물 리바이어던을 암시한다. [사진 오드]

평범한 중년 가장이 공권력에 밀려 하루아침에 평생 살아온 집을 잃는다. 만약 이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어떨까. 이 같은 내용을 그린 러시아 영화 한 편이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과 올해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등 많은 상을 휩쓸었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리바이어던’이다. 과연 무엇이 이 남자의 삶을 산산조각 냈는가. 정치권력·종교·거대한 운명 중 그 무엇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힘을 합친 결과인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러시아 시골 바닷가 마을. 주인공 니콜라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는 재개발을 명목으로 그의 집을 빼앗으려는 시(市) 당국을 상대로 법정 다툼을 벌이지만 패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니콜라이의 친구인 변호사 드미트리가 시장의 정치적 약점을 쥐고 니콜라이를 돕는 것도 잠시. 시장은 폭력을 동원해 드미트리의 입을 막는다. 운명은 점점 더 고약하게 니콜라이를 궁지로 내몬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51) 감독은 1994년 미국 콜로라도 그랜비에서 일어난 ‘킬도저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던 마빈 히메이어라는 남자가 불도저를 개조·무장해 시청·전(前) 시장의 집·신문사 등을 습격한 뒤 불도저 안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다. 몇 년 전부터 그의 땅을 사려는 시멘트 회사와 법정 다툼을 벌여온 히메이어는 소송에서 패하고, 그랜비 정부가 그에게 벌금까지 물리자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니콜라이 역시 권력이 휘두르는 시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피해자다. 술 취한 시장은 그에게 “네놈은 이제껏 그 어떤 권리를 가진 적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거야”라 소리친다. 시장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불안해질 때마다 주교를 찾아가는데, 주교는 “권력은 신에게서 나온다”는 말로 시장에게 암묵적인 지지를 약속한다. 권력과 손잡은 종교 앞에서 정의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리바이어던’이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의 욥기에 나오는 바닷속 괴물의 이름이다. 욥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하느님은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을 이야기한다. 한낱 인간이 창조주의 이치를 깨우칠 수는 없다는 뜻이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교만한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성경의 괴물 리바이어던과 같이 막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제목의 다양한 의미를 녹여내며 현대 사회의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날카롭게 통찰한다.

 영화 말미에서, 성미가 불같던 니콜라이는 모든 것을 빼앗긴 뒤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도 이해가 안 돼요.” 이 영화는 그 모든 이야기 끝에 거대한 파도가 으르렁거리는 바닷가를 장중한 음악과 함께 비춘다. 마치 그 파도가 인류의 역사에서 이 같은 비극이 숱하게 되풀이되는 광경을 오래도록 지켜봐 왔다고 고백하는 것 같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영상 유튜브 Film Festivals and Indie Films 채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강성률 영화평론가):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을 유기적으로 엮어가는 방식에 입이 떡 벌어진다. 단연코 2015년을 장식할 영화.

★★★★(김나현 기자): 부패한 권력과 종교가 평범한 남자를 파멸시키는 과정을 건조한 시선으로 그린다. 숨을 죽이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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