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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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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대학생 자녀를 둔 당신만큼 취업난을 실감하는 곳 중 하나가 대학 총장실입니다. 총장에게 걸려온 전화는 비서실 직원들이 응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 “총장을 바꿔 달라”는 학부모들의 전화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일명 ‘헬리콥터맘’(헬리콥터처럼 자녀 주위를 맴돌며 지나치게 챙겨주는 엄마)을 달래느라 진땀을 뺀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 비서실 직원 이모(38)씨의 하소연입니다.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무작정 ‘총장을 바꿔 달라’고 떼를 쓰는 거예요. 졸업반인 딸이 열심히 공부한 만큼 교수가 학점을 안 줬다는 겁니다. 학점을 올려 달라고 사정해도 교수가 봐주지 않아 취업을 못하게 생겼으니 총장과 통화하고 싶다며 울먹였습니다. 잘 설득해 전화를 끊었지만 대학이 유치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의 한 여대 총장실 교직원 김모(45)씨도 지난해 12월 학부모의 ‘협박성’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우리 딸이 전과를 해야 하는데 학점이 0.1점 모자란다. 전과를 못해 취업에 지장이 생기면 책임질 거냐’고 따지더라”며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으름장을 놓는데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성적 민원뿐만이 아닙니다. “총장 추천서가 있어야 취업에 유리하니 추천서를 써 달라”는 민원부터 교환학생·기숙사 선발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총장실 밖 대학행정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 가족여행을 가는데 수강신청 기간과 겹친다. 우리 애만 사정을 봐줄 수 없느냐”부터 “우리 애가 어제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학생예비군 훈련 단체 버스를 놓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까지 황당한 학부모 민원에는 끝이 없습니다. 인천의 한 사립대 홍보실 직원 원모(40)씨는 “최근 대학 ‘홍보 도우미’를 선발했는데 지원자 아버지 가 지인을 통해 여러 곳에 선발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삐뚤어진 부성애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럽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쏟아지는 학부모 민원을 전담하는 고객만족(CS)센터를 설치하는 대학도 크게 늘었습니다.

 혹시 대학생이 된 자녀,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으신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 속에 부모로서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도 크실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러 대학문을 두드릴수록 자녀는 움츠러들 겁니다. 자녀의 대학 생활에 관심을 끊으란 얘기가 아닙니다. 자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여지를 주자는 겁니다. 이제 자녀도 당신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으니까요. 헬리콥터처럼 대학가를 맴도는 당신을 부끄러워할 자녀를 대신해 드리는 편지입니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