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된 「비상임 이사」 제|양산된 은행가의 「새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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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은행 임원들을 아직도 금융계의 「별」이라고 부른다면 요즘 「별」들은 너무 쉽게 떨어지고 너무 쉽게 붙는다.
지난해에는 금융계를 강타한 대형사고의 회오리 속에 별중의 별이라 할 은행장을 비롯, 많은 은행임원들이 하루아침에 자리를 물러나더니 지난 연말과 올해 시은 정기 주총을 전후해서는 은행마다 약속이나 한듯 7명씩의 새「별」들을 모셔다 앉혔다.
이름하여 비상임 이사-.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다 지극히 보수적인 우리 은행가에 불과 2∼3개월새 도합 35명의 은행임원이 무더기로 양산됐으니 「보통일」은 아니다.
또한 은행의 이사라는 직함이 갖는 상법상의 의결권(은행장의 선임, 은행예산과 결산, 지점장의 선임과 해임 등)과 대외적인 공신력을 감안하면 결코 「보통 사람들」을 함부로 앉힐 자리도 아니다.'
그런데도 임원이 한명 바뀌면 술렁대게 마련인 각행 직원들은 비상임 이사 7명이 한꺼번에 선임됐는데도 시큰둥한 표정들이고 비상임 이사선임을 계기로 경영방식에 이렇다할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 은행도 없으니 이또한 「보통일」이 아니다.
애초 시은에 비상임 이사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은 지난해 금융사고 이후 은행의 책임경영을 위해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고 했던 당국의 발상이었다.
또한 한미은행장 시절 「효율적」인 비상임 이사제도를 몸소 겪었던 김만제 재무장관의 의견도 이같은 새로운 제도의「실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작 이같은 아이디어가 실행되려니 몇 가지 「변질」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주인다운 주인을 찾아 줄수가 없었다.
주인다운 주인은 하나같이 은행에 큰빚을 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은행에 「신세」를 질 주인들이어서 이들을 비 상임이사로 앉혔다가는 도리어 은행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대주주들이 비 상임이사로 선임돼야하는 원칙은 뒷전에 밀리고 은행마다 「소액주주」 만을 골라 뽑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현재 각행의 비상임이사 중 지분율이 2%를 넘는 주주는 상은의 계봉혁 무협부회장 하나 뿐이다.
따라서 정작 주인이라고 보아줄만한 비상임이사는 한명도 없다고 보아야 옳다.
또한 비 상임이사가 먼저 선임되고 이들 중에서 은행장·전무 등의 상임이사가 호선되는 것이 순서인데도 도리어 상임이사들이 비 상임이사를 골라 뽑는 순서가 돼버렸다.
골라 뽑힌 비상근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어떤 발언을 할수 있으며 또 얼마큼 존중될 것인가.
실제로 가장 먼저 비 상임이사제도를 도입한 조흥은행의 경우 그간 한달에 2번씩 상임·비상임 이사들이 모두 참석하는 「간담회」는 있었지만 새로 구성된 확대이사회가 은행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논의하는 실질적인 의결을 한 적은 없다.
또 이번 주총 때가 돼서야 비 상임이사를 선임한 제일·상업·서울신탁은행 등 3개 은행은 주총 당일날 한번 형식적인 확대이사회를 가졌을뿐 아직 비 상임이사들을 어떻게 예우하고, 앞으로 비 상임이사제도를 어떻게 운용해야할지에 대해 「개념정립」 조차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비 상임이사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운용될것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주인답지 않은 주인」들이 은행경영에 도움을 줄수 있다면 아직까지는 제도보다 「운용의 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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