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보다 국민 건강 먼저 챙기는 소통형 리더 나올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8호 12면

오는 18~20일 치러지는 의협회장 선거에는 강온파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그간 의협회장은 투쟁을 앞세우는 강경파가 득세해왔다. 사진은 지난해 3월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전공의들이 원격의료 도입 반대 파업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전국의 11만 의사들은 국민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도 크다. 그런 의사들의 대표를 뽑는 대한의사협회장 선거가 18~20일 치러진다. 의협회장은 3년 임기로 상근직이다. 진료실을 떠나 오로지 협회 업무만 보는 자리다. 16개 시·도 의사회를 총괄한다. 한 해 예산 규모는 284억원(올해 기준)이다. 의사들의 수장이고, 수백억 예산을 주무른다고 회장 자리가 중요한 건 아니다. 더 중요한 역할은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파트너로서 국민 건강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매년 정부와 동네의원 수가(진료비) 협상에 나서 국민들이 얼마큼 돈을 내고 진료를 받을지를 결정하는 데 깊숙이 개입한다.

11만 의사의 대표 뽑는 의협회장 선거 18~20일

하지만 그동안 의협회장단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엘리트 직능단체의 수장 역할보다는 회원들의 이익만 좇아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인식이 강했던 탓이다. 의약분업(2000년) 이후 직선제로 선거가 바뀐 뒤 ‘투쟁’만을 외치는 강경파가 득세해 왔다. 정부와 의견 대립이 생길 때마다 파업 카드(2000년 의약분업, 2007년 의료법 개정, 2014년 원격의료 추진)를 꺼내 들었다. 익명을 원한 한 대학 교수는 “학식 있고 덕망 있는 인사보다는 개원 의사들의 지지를 발판 삼아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의협을 장악해 왔다”고 꼬집었다.

이번엔 달라질 수 있을까. 후보 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대 대 비서울대, 강경파 대 온건파 구도가 뒤섞였다. 이번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하반기에 원격의료,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규제 완화 등 의료 정책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보건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우리는 의협을 이익단체가 아닌 정책 파트너로 생각한다”며 “의사의 환자, 정부의 국민은 다른 대상이 아닌 만큼 동일한 지향점을 향해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파업 vs 투쟁 vs 수가 인상 … 5명 각축
후보 중 경기도의사회장 조인성(52) 후보는 ‘파업을 않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파업은 투쟁이 아니라 자해”라면서 “설득과 연대로 협상력을 높여 성과를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조 후보가 이런 선명성을 전면에 내건 것은 강경파 회장단과의 거리를 두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환규 전 회장은 2013년 12월 집회에서 원격의료에 반대하며 목에 칼을 긋는 퍼포먼스를 했다. 조 후보는 “그런 장면이 여과 없이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돼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두고두고 회자될 의사 사회의 수치”라고 말했다.

추무진(55) 현 의사협회장도 온건파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 5월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당시 노환규 회장이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물러난 뒤다. 노 전 회장이 선대본부장을 맡을 정도로 ‘노환규의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 전 회장 때문에 둘 사이가 멀어졌다”는 의협 관계자의 전언이다. 추 회장은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수가 협상, 원격의료 저지 등의 현안을 이끌어 가겠다”고 ‘안정 속의 변화’를 강조했다.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 강경파 중에는 서울시의사회장 임수흠(60) 후보의 톤이 비교적 낮다. ‘선택분업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그는 원격의료 저지 ‘기요틴(단두대) 규제’를 위한 상시 투쟁체를 결성하겠다고 했다. 그는 “‘항상 투쟁만 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투쟁력과 협상력을 함께 쥐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택분업이란 약을 병원과 약국 중 어디에서 처방받기를 원하는지를 환자가 결정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의협 전 정책이사 이용민(57) 후보와 충남의사회장인 송후빈(55) 후보는 강한 의협을 주창한다. ‘총대를 메겠습니다’를 선거 구호로 내건 이 후보는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걸고 뒤집기 한판승을 위해 3년 내내 투쟁위원장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송 후보는 “37대 집행부(노환규 전 회장)를 계승해 혁명을 완성하겠다”고 했다. 젊은 의사들의 지지가 높은 노 전 회장을 부각시켜 표심을 얻으려는 것이다.

유권자 4만4000명, 적극 투표층이 판가름
다섯 명의 후보 중 두 명은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역시 강경파가 세 명으로 우위다. 다섯 후보의 공약은 내용보다는 ‘협상이냐 투쟁이냐, 혹은 병행이냐’처럼 방법론에 차이를 두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대체로 큰 수술을 하는 외과 쪽이 강경하고, 아이를 진료하는 소아과나 내과처럼 스케일이 작은 진료과는 온건한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해 논란을 일으킨 노 전 회장은 심장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조인성·추무진 후보는 각각 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강경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이 외면하는 이익단체로 낙인찍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11만 명의 의사 중 유권자는 2년째 회비 체납이 없는 4만4414명이다. 이 가운데 적극적으로 온라인 투표 참여 의사를 밝힌 회원은 76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의협 관계자는 “온라인 선거 참여는 적극적 투표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얻는 것도 없이 투쟁만 반복하는 행태에 염증을 느낀다”면서 “회장이 누가 되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의대 장성구(비뇨기과) 교수는 “의료계와 국민 사이에는 깊은 불신의 늪이 있다”면서 “항상 의료계 고민의 핵심과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하고,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돼야지 싸우는 모습만 보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한의학회장(4월 임기 시작)인 서울대의대 이윤성(법의학) 교수는 “의사는 스스로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간 보여준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협상 전략이 전혀 없고, 투쟁만 앞세우니 과격해지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또 “낮은 수가 구조처럼 의사들이 불만스러워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그렇더라도 설득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 의협을 투쟁하는 단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