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노 대통령 '쓴소리' 북한에 약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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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는 중에 남북관계에서도 때로는 쓴소리도 하고 얼굴을 붉힐 땐 붉혀야 한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국내외 우려가 고조되는 시점에서 당사자로서 할 말을 했다고 본다.

지난해 미국 LA에서의 대북 유화적 발언과 비교하면 북한 정권이나 북한의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변화된 것 같다.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위반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지연 등 남북 간 상호 신뢰 훼손 책임이 북쪽에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6자회담이 북핵 문제의 유일한 돌파구이며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중국과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임을 권고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에 대해 매우 '쓴'소리를 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말에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듯이 '쓴소리'가 몸에 좋은 보약이 되려면 그 '쓴소리'가 얼굴만 붉어지는 독초가 아니라 진정한 약효를 지닌 내실있는 약초여야 한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잘못된 행태를 아프게 지적하는 한편으로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안정을 흔들지 않겠다는 '달콤한 유혹'의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대규모 지원은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쓴소리'는 '쓴소리'대로 하되 남이 안 보는 데서는 몸에 안 좋은 고기와 술을 계속 주겠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의 독일 발언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이 '쓴소리'는 대통령의 평소 사석에서의 생각일 뿐 큰 의미를 두지 말아달라고 진화에 나섰다니 정말 약효가 있는 '쓴소리'인지 두고 볼 일이다.

'쓴소리'가 몸에 좋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지난 8일 북한은 전국적으로 조류독감 방역사업이 실시되고 있으며 병 발생지역에서 "국제동물전염병사무소가 정한 원칙에 따라 조류독감에 걸린 닭들을 소각 매몰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파견된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국제기준에 따라 조류독감 재확인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공개적으로 조류독감 발생 사실을 시인하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국가 방역체제의 허술함을 드러내고 엄청난 양의 닭들을 소각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북한 당국이 감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난달 30일 평양에서 개최된 독일월드컵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북한-이란전에서 발생한 관중 난동사건으로 북한은 국제축구연맹의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6월 8일 평양에서 개최될 북-일전이 관중 없이 치러지거나 제3국에서 진행될 수도 있을 만큼 징계 수위가 높을지도 모른다. 심판 판정의 오류에 관계없이 국제축구연맹이 규정한 경기 질서와 규율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돼 왔기에 이러한 국제기준에 무지하거나 무시해오던 북한으로선 매우 쓴맛을 보게 되는 셈이다. 이로써 북한이 좀 더 성숙하고 세련된 태도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면 쓴 약이 보약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쓴소리'가 북한에 보약이 되게 하려면 이를 구체적 정책으로 구현시켜 나가야 한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합의 위반을 지적하고, 개혁과 개방과는 거리가 먼 북한의 제반정책에 제동을 걸고, 대북식량 및 비료지원이 북한 인민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는 데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유엔에서의 대북 인권결의안 논의에서도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쓴소리'도 하고 개선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그 '쓴소리'가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진정으로 개선하는 보약이 될 것이다.

쓴 약이 보약임을 증명한 독일 통일의 교훈을 바르게 체득하고 합당한 정책 추진에 차질이 없어야 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