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경각심 가져야"… 당 기획위 내부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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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협상 비준안 처리 등 최근 잇따른 호재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분석이 나왔다. 30일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 기획위원회(위원장 김재원 의원)가 29일 비공개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세 분석 보고'를 강재섭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한나라당이 경쟁 정당의 지지율 상승 예상 분석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당 기획위는 보고에서 우선 23일 국회의 쌀 협상 비준안 처리와 이 과정에서 주목 받은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을 긍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조 의원은 농촌(강원 홍천-횡성) 지역구 출신임에도 찬반 토론에서 "이번 협상이 100% 잘됐다는 것은 아니나 안 받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낫다"는 요지의 소신 발언을 해 인터넷에 지지글이 쏟아졌다. 표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찬성 107명에 반대가 6명이었지만 한나라당은 찬성(30명)보다 반대(51명)가 많았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중동 순방길에 오른 사이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잇따라 특강행사에 참여하는 등 국민의 관심을 모은 점도 여당 지지율에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대선 후보군의 경쟁으로 흥행 효과를 얻은 것과 같은 논리다.

테러와 극렬 시위 등이 우려됐던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무난하게 치른 것과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이 당을 원만하게 이끄는 점도 호재로 거론됐다. 더욱이 여당에 부담을 줄 수 있었던 오포 비리, 도청 수사 등이 '황우석 박사의 난자 논란'에 묻혀 쟁점화에 실패했다고 평가됐다.

반면 한나라당은 ▶불법 도청 테이프 특검법.특별법▶부동산 관계법▶예산안▶과거사 정리 등 부담스러운 소재가 겹쳐 지지율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이 집중적으로 주장해온 예산 삭감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정부로부터는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국민에게는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획위는 "한나라당이 이 시점에서 대처를 잘못해 여론의 판도가 달라지면 40%대의 지지율이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당 차원의 경각심을 촉구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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