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 뚜렷한 새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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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국영 철도사업의 경영개선을 위해 민간자본을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만성적인 적자로 침체에 빠진 철도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그 질을 높일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지난 21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국유철도재산의 활용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역사의 건설과 관리, 일부 철도업무의 위탁운영, 철도여객의 편의시설 및 서비스, 철도운송관련 사업등을 할수 있는 주식회사를 민간과 합작으로 설립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법에 근거해서 우선1차로 서울역을 비롯해 부산· 동대구·광주·영등포·청량리역 등의 역사를 대형빌딩으로 지어 여객의 편의시설과 겸용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철도창설 85년을 맞는 우리 나라는 경인선 개통당시 33·2㎞에 불과했던 총연장이 2백배에 가까운 6천㎞로 늘어났고 역수도 5백24군데에 이른 큰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가 일제시대 아니면 해방직후에 지은 낡고 특색 없는 건물이어서 오늘의 감각에 부적합한 면이 많은 실정임은 알려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역만 해도 지금부터 약60년전인 1925년 준공당시 서울의 인구는 33만6천명에 불과했었다.
이제 인구1천만명을 목전에 둔 현실에서는 서부역 등의 증축에도 불구하고 협소함과 불편함이 극심한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낡고 비좁은 역사대신 현실에 맞는 새 역사를 짓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며 여기에 민자를 유치하는 일은 우리정부의 재정형편상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역사란 여객과 화물이 모여서 기다렸다가 타고 내리는 철도와 도시의 접점이다. 따라서 이에 필요한 설비가 충분히 갖추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우선 여유 있는 공간의 확보가 중요하다.
하루동안의 평균 승차인원과 송·출영 인원 및 앞으로의 증가추세까지도 감안,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공간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또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필요한 여행준비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며 상당시간을 대기하는 곳의 특성도 살려야 한다. 환풍과 채광시설은 물론이요 안내소, 공중전화, 유실물센터, 공중변소, 응급가료시설, 매점 등이 고루 배치돼야 한다. 대도시의 역사에는 식당이나 쇼핑센터도 있어야 할것이며 오락장이나 숙박시설·영화관 같은 부대시설도 갖춰 여객들의 편익과 경영상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도 철도재정의 충실화를 위해 생각해볼 일이다.
역사란 그도시의 관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기능적으로 완벽함이 요구되는 동시에 외형적인 미를 갖춰야 한다. 이것은 사치스럽게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건축기술의 정수를 집약한 건축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우리는 큰 국제행사를 앞두고 몰려들 외국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다. 따라서 한국적인 정취와 향토색을 볼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역이나 룩셈부르크 역, 캐나다의 퀘벡역, 파리의 가르 몽파르나스역 등 구미의 이름난 역사들이 당대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그 당시에 유행하던 건축양식을 총집결해 건립됐다는 선례는 검토해 볼만하다.
새로 짓는 역사가 단순히 기차정거장이 아닌, 한국 건축예술의 총화로 역사에 남도록 하려면 여러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권 있는 첨문위 같은 것을 만들어 좋은 아이디어를 집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년 쓰다가 헐어버리거나 개축해야할 가건물 같은 것은 이제 그만지을 때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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