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뒤져 고민하는 서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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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의 연구실에서는 쓰레기만 양산하는가?』 『물질적 풍요 뒤의 창조적 정신의 고갈?』 등등 서독의 보도매체들은 고도기술산업 분야에서 미국·일본 등에 뒤지는 현상을 두고 이렇게 한탄하는 일이 잦아졌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고급기술 제품분야에선 서독이 아직 국제시장에서 미국의 23%, 일본의 14%에 비해 17%로 2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미래의 산업이라 통칭되는 전자·생명공학분야에서 낙후돼 서서히 선두그룹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다.
서독의 여론들은 지금까지는 특수 공업기계부문이나 화학·전기제품·자동차공업분야에서는 뒤지지 않는다고 자위하면서도 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는 「태평양 경제권 시대의 도래」전망에 대해 우려 섞인 관심을 상당히 보이고 있다.
서독이 최근 이처럼 과학기술의 정체성을 걱정하는 이유는 컴퓨터·전자산업분야에서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그기초가 되는 「학문적 창조정신」이 쇠퇴하고 있다는 데서도 찾을수 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노벨상수상자의 숫자다. 독일은 1901년부터 1944년까지 44명의 가장 많은 수상자를 갖고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45년 이후 83년까지 40년 가까이 미국사람 1백27명, 영국사람 45명이 노벨상을 받은데 비해 독일사람은 16명에 그치고 있다. 요즘엔 독일학자들이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려들면 거절당하기 일쑤다.
이런 창조적 학문분야뿐 아니라 응용과학분야인 특허나 기술의 라이선스의 수출입에서도 적자다.
슈피겔지(82년3월)에 따르면 30년간 서독이 외국기술을 사들인 것은 1천9백79건에 10억달러 어치인데 비해 수출한 것은 9백61건에 4억달러를 약간 밑돌고 있다.
이처럼 서독의 과학기술이 낙후되고 있는데 대해 과학자들의 자만과 안일·비능률·정책의 잘못 등이 그이유로 거론되고있다.
서독이 매년 과학기술연구분야에 투자하는 액수는 GNP의 2·5∼.2·7% 수준으로 영국이나 일본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1983년 이부문에 대한 투자는 4백68억마르크(1백87억달러· 83년달러 환율)였다.
문제는 투자대상이 핵 발전기술이나 항공 우주 등과 같은 대형프로젝트에 집중됐던데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단적인 예가 현재 서독의 전자· 컴퓨터시장의 상황이다. TV나 비디오·오디오 등 오락성 전자산업 시장에 독일상표로 제품이 나오고있지만 독일기업이 소유하고있는 회사는 미미하다.
서독전자제품의 대명사처럼 물리던 「텔레풍켄」·「두얼」 등은 프랑스의 「톰슨· 브란트」에, 「그룬디히」는 화란의 「필립스」에 경영권이 넘어가고 미국의 ITT, 일본의 소니도 독일의 유수한 전자기업을 흡수해버렸다.
모두가 경영부실로 외국기업에 넘어갔지만 그근본적 원인은 기술경쟁에서 뒤졌기 때문인 것으로 서독매스컴들은 분석하고있다.
컴퓨터산업분야도 마찬가지다. 대형컴퓨터는 미국의 IBM이 주종을 이루고 개인용 컴퓨터분야에서 마저 독일은 침묵을 하고 있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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