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계기|한-중공 이산 남매 찾았다|중공 교포선수, 우리기자단 찾아와 가족사진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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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 살아있었구나.』 10일 하오9시40분, KBS-TV화면은 동계올림픽제전이 열리고있는 사라예보와 서울을 연결, 40년전 헤어졌던 한 남매 피붙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감동의 장면을 전달해 주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40년전 중공길림성 무송현에서 생이별한 남동생 이창빈씨(54)를 찾은 서울의 이천덕씨(56·신월1동 135의12) 눈에는 그리움과 기쁨의 눈물이 넘쳐흘렀다.
이 극적인 방송해후는 동계올림픽에 스키선수로 참가한 ,중공선수단의 한국계 중공인 임광호 선수(25세가량)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임선수는 아직도 무송현에 살고있는 창빈씨외 4남매중 막내딸 문옥양(24)의 약혼자.
창빈씨는 장차 .사위가 될 임선수 편에 누님 천덕씨를 찾는다는 사연의 편지 1통과 사진 한장을 맡겼다.
그 사진은 40년전 헤어지기 직전 천덕씨가 무송현립의원 앞에서 찍은 독사진이었고 그위쪽에 자신의 명함판 사진을 덧붙인 것이었다.
임선수는 이 편지와 사진을 사라예보현지에 특파된 KBS기자에게 전달하고 장인어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도록 부탁했다.
사진과 편지사연이 방영되던 시간 천덕씨는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무심코 켜둔 TV화면을 보는 순간 이씨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단박에 알아볼수 있었어요. 그리고 순간 내 귀와 눈을 의심했어요.』
남편 황명규씨(64·무직) 등 3명의 가족과 함께 KBS로 달려간 천덕씨는 현지에서 보내온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보고 방송국에서 주선한 국제전화를 통해 현지특파원과 1시간여 대화를 나눴다.
특파원이 동생 창빈씨가 써보낸 편지내용과 서로의 생년월일· 가족상황·이별당시의 상황을 읽어주는 동안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하며 천덕씨는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조카사위인 임선수와의 통화에서는 16살이후 여태까지 써보지 못했던 중국말을 되살리기도 했다. 천덕씨의 앨범에는 동생 창빈씨가 보낸 사진과 똑같은, 자신이 간호원으로 근무했던 무송현립의원 앞에서의 사진이 있었다.
천덕씨 남매가 헤어진 것은 해방 이듬해인 46년 봄. 날로 자유를 억압해오는 공산사회가 싫어진데다 2년전 16살의 나이로 결혼한 황씨가 중공의용군에 붙들려갈 위험에 처하게되자 당시 여관업으로 생활하던 친정식구를 두고 월남했던 것.
『외아들인데다 지금의 사범학교격인 사도학교 2년에 재학하고있어 함께 월남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어요. 그러나 어려서부터 똑똑한 동생이었으므로 잘 견뎌내고 있으리라 믿었어요.』
대한적십자사는 동계올림픽이 맺어준 이들 남매의 극적인 만남을 실현키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 다각적인 방법을 구상하고있다고 밝혔다.
한적은 창빈씨의 주소를 알아내 1차 서신연락을 한뒤 일시 귀국초청을 할수있다고 밝혔다.
『소식의 길이 트였으니 이제 만남의 길도 열리겠지요』 천덕씨는 당국의 노력으로 혈육을 만나보는 기대에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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