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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히 지켜야 할 민족 유산 한지(韓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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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지는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그 생명이 땅으로 돌아갈 때 사용되기도 했으며, 역사를 기록해 후대에게 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문창호지.우산 등의 생활용품과 가구.의류 등 한껏 생활의 멋을 내는 데도 사용됐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종이에 물을 들이고 편지봉투를 만들어 사용한 것을 보면 우리 선조의 지혜와 독창성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한지의 원료인 닥(楮)피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질기고 강하며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충격에도 쉽게 상처를 받지 않으며 손길이 가면 갈수록 단단해진다. 이는 우리 민족의 강인하고 온유한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우리 민족의 삶과 혼이 배어 있는 우리의 종이 '한지'. 우리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칫 잊히기도 하고 유실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9년 강원도 원주에서는 시민단체의 주도로 '한지문화제'가 시작됐다. 한지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한 '한지문화제'는 잊혀 가는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한지'의 우수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매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물빨래와 드라이클리닝이 가능한 한지직물을 이용한 다양한 인테리어 상품.의상.생활용품을 선보임으로써 한지가 종이의 개념을 넘어 닥나무를 이용한 신소재 섬유로 거듭 태어나는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월 파리에서는 한지패션쇼.작품전시 등의 다채로운 '한지문화제'를 개최해 '트레비앙'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이제 세계 속에서 당당히 경쟁하며 한지의 우수성을 홍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기획에서 예산 마련까지 철저하게 민(民) 주도로 진행되는 '한지문화제'는 한지문화의 보급과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전통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 힘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들어 온 민의 작은 노력에 드디어 관(官)에서도 화답을 보내왔다. '한(韓)브랜드 전략사업'을 통해 한지종합발전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한지'를 지키고 보존하려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계획은 용두사미가 될 것이고 추진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한지사랑'의 붐을 전국에서 일으키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민관의 지혜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본란은 16개 시.도의 74명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 올해 6월 결성된 중앙일보의 '전국열린광장' 제3기 위원들의 기고로 만듭니다.>

김진희 원주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