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의 지혜담은 한마디 들려줄 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유난히 길고 추운 겨울이었다.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통보관은 여느 해처럼 맨먼저 전국 최저 춘천 영하 XX도를 알리고, 그러면 서울의 늙으신 어머니는『아이고, 우리 딸이 얼마나 추울꼬』하는 걱정으로 가뜩이나 많은 시름에 한가지를 더 보탠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봄도 멀지 않으리니. 친구로부터 입춘대길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편지를 받고 내다본 창밖은 정말 눈부시게 밝고 환하여 나는 무엇엔가 이끌리듯 집을 나섰다.
겨울동안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몸과 정신이 봄기운으로 대지처럼 꿈틀대며 소생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나를 끌어낸 것이리라.
강이 풀리고 있었다. 얼음 풀린 강은 새파랗게 날선 빛으로 흐르고, 그 위를 채 녹지 않은 얼음덩이가 거품처럼 떠있었다. 밤새 쩡쩡 울리는 해빙의 소리에 밤잠을 설치던 강변 마을사람들은 이제 그물에 줄을 드리워 고기를 낚아 올린다.
겨울들어 혹독한 추위가 들이닥치면 강은 쩡쩡한 소리로 얼어붙고 봄이되면 또다시 그러한 소리로 풀린다. 결빙과 해빙의 그불가사의한 울림을 강가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물이 우는 소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자연이란 절기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순응하는 것이 순리라지만 얼고 녹음에, 흐름과 멈춤에 나름대로의 아픔이 왜 없을까. 그러한 생각도 한편 오만하고 피사적인 동정일지 모른다. 얼었던 것은 녹게 마련이고, 두꺼운 얼음 아래에서도 물길은 흐르고 고기들은 살고있기 때문이다.
춘천은 물이 흔하고 강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때로 인간과 역사,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에 반하는 여러현상들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속에 수렴하여 조명하고자 하는 내 의식은 강을 바라보며 사는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절벽에서는 폭포로 떨어져 내려 소를 만들고 장애물은 만나면 사나운 기세로 빠르게 소용돌이 치는 물이지만 평지에 이르면 다만 부드럽고 잠잠할 뿐이다.
바람에 잔 물굽이만 흔들릴뿐 잠긴 듯 모양이 없고 흐르고자 하는 욕망조차 버린듯하지만 장난삼아 종이배라도 몇 개 접어 띄워보면 그 배를 실어나르는 물길을, 쉼없는 흐름의 방향을 보게된다. 일찍이 공자님께서 『물이여, 물이여』하며 칭송하여 마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지닌 바 이러한 근원성과 덕성때문이 아니었던가.
무심히 흐르는 강물에서 명상을 얻고 그 흐름에서 지혜를 구했던 성자들을 생각해본다. 만성적인 주림과 기다림, 항상 예감과 안타까움과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사는 생활과 마음, 두껍고 무디어진 감관을 뚫고 나를 소생시킬 한마디 말씀, 혹은 빛을 구하듯.
나는 언제나 강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삶이 시간의 강물에 그물을 드리우는 일이라면 보다 넓고 깊이 힘차게 그물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은 겨울의 끝, 그러나 매운바람결에 봄눈이 트고 있다. 차가운 강바람에 귓바퀴가 시리지만 나는 얼음 풀린 강이 내게 들려줄 말을 듣기 위해 하염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서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