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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롯데그룹 후계구도 잡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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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1=3월 21일 롯데칠성은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격호 롯데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49) 일본 롯데 부사장을 신임 이사로 선임했다. 롯데칠성은 "맥주.음료 등 식음료 분야에서 일본 시장의 비중이 커져 일본 롯데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부사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에서는 일본 롯데는 신회장의 장남인 동주씨가 물려받고 한국 롯데는 차남 동빈씨가 이어받을 것이라는 기존 롯데의 '후계구도'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은 그동안 한국 계열사 중 롯데알미늄에만 이사로도 등재돼 있었을 뿐 한국 롯데의 주력기업에는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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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월 29,30일 이틀간 신회장은 롯데칠성 1만6천3백주를 장내 매각해 지분율을 11.05%에서 9.74%로 낮췄다. 신회장이 매각한 지분은 2세들이 모두 사들였다.

차남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7천주를 매입했고 큰 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 장남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이 각각 4천6백50주씩 샀다. 이에 따라 롯데칠성 지분율은 신동빈 롯데 부회장 5.1%,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 2.84%,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 2.66% 등으로 각각 높아졌다.

지분 이동 과정에서 차남인 신부회장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지분이 돌아가자 롯데의 후계 밑그림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롯데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새로운 분석이 잇따랐다. 2세의 경영수업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온 것이라는 추측도 돌았다.

롯데의 후계 밑그림을 두고 재계에 각종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만큼 롯데의 후계 밑그림에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려 있다는 얘기다.

1922년 태어난 신격호 회장은 올해 81세다. 재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창업 1세대 경영인으로는 신회장이 거의 유일하다. 신회장이 나이가 많은 데다 2세들도 15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제는 후계작업이 본격화할 때가 오지 않았느냐'며 롯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신회장,'왕성하게' 활동 중=롯데 후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의 질문에 롯데의 공식반응은 "결정된 바 없다"다. 신회장이 아직도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신회장이 평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신회장은 35년이 넘도록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현해탄 경영'을 하고 있다. 홀수달은 한국에, 짝수달은 일본에 머물며 경영 활동에 나선다. 신회장은 한국에 오면 계열사별로 업무 현황 보고를 받는다. 신회장이 워낙 꼼꼼한 데다 경영현황을 꿰뚫고 있어 계열사 사장들은 보고 때가 되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고 한다. 특히 고령에도 불구하고 숫자 감각은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롯데 관계자는 "신회장은 계열사 대표가 월별 경영실적을 보고할 때 숫자가 이상하면 6개월 전에 보고한 수치까지 정확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롯데는 최근까지도 신회장이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마당에 후계 구도 확정 운운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한다.

지분상으로는 후계 그림 '안개속'=지분 소유구조로 볼 때는 장남과 차남 가운데 어느 한 쪽에 특별히 무게가 실려 있다고 보기 어렵다.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엇비슷하게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의 주력회사인 롯데쇼핑의 경우 신동빈 부회장이 21.74%, 장남 신동주 부사장이 21.73%를 소유해 0.01%포인트의 차이로 1대 주주와 2대 주주에 올라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의 가지고 있는 재산가치도 비슷하다. 지난해 8월 미디어에퀴터블이 비상장주식과 상장주식 등 금융재산 정보를 통해 국내 부호의 재산을 추정한 결과 신동빈 부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 신동주 부사장은 3위에 올랐다. 두 사람은 당시 주식 가격을 기준으로 1조원 내외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롯데 대권'의 향배는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에 달려 있다는 시각이 많다. 신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롯데의 관련사가 1백% 지분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는 롯데건설의 지분을 47.5%나 갖고 있는 것을 비롯해 롯데상사(30.5%).롯데산업(36.6%) 등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한국 롯데는 둘째 아들이 맡을 듯=과연 '신심(辛心)'은 어디에 있을까. 롯데 안팎에서는 장남은 일본 롯데, 차남은 한국 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표면적으로도 차남은 한국 롯데 부회장을, 장남은 일본 롯데 부사장을 맡고 있다. 일본 롯데 사장과 한국 롯데 회장은 창업자 신회장이다.

한국 롯데의 경우 차남은 코리아세븐.롯데닷컴 대표이사에 올라 있지만 장남은 롯데칠성.롯데알미늄의 등기 이사로만 돼 있다.

특히 최근 신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의 지분 이동 과정에서 차남이 장남보다 조금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되면서 이 전망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장남이 롯데칠성 이사로 등재된 것은 장남의 국내 활동 여지를 조금 넓혀 주고 차남을 긴장시켜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신회장의 의도가 깔린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신동빈 부회장은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경제학과)대학과 미국 컬럼비아대학(경영학 석사)을 나온 뒤 일본 노무라 증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7년간 노무라 증권에 근무하면서 입사 6년만에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등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8년 롯데에 들어간 뒤 94년 코리아세븐을 인수해 편의점 사업을 시작하고 2000년에는 인터넷쇼핑업체인 롯데닷컴을 만드는 등 신규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부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더라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꼼꼼한 신회장의 성격상 갑자기 물려주기보다 천천히, 지속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2세에게 양도하며 '이양작업'을 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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