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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여검사' 무죄 … 대법원, 사랑의 정표로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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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벤츠 S클래스 승용차, 샤넬 맥시 핸드백, 법인 신용카드…. 검사가 변호사로부터 이 모든 걸 ‘선물’로 받았다면 죄가 될까. 두 사람이 연인관계이고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받은 게 입증되지 않는다면 무죄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2일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의 장본인인 이모(40·여) 전 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제정의 계기가 된 이 사건은 이씨가 변호사로 일하다 만난 부장판사 출신 최모(53) 변호사와 2007년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됐다.

 이씨가 같은 해 8월 검사로 임관한 다음에도 내연관계는 지속됐다. 최 변호사는 이씨가 살 40평대 아파트를 임차해 줬으며 3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2650만원 상당의 까르띠에 시계, 1200만원대 모피 롱코트 등 고가의 선물도 아낌없이 줬다. 2009년에는 벤츠 승용차를 리스해 타고 다니게 했으며 2010년부터는 소속 법무법인 명의의 신용카드도 쓰게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11년 11월 의혹이 불거지면서 파국으로 이어졌다. 최 변호사가 자신이 연루된 고소 사건에 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이씨가 이를 사법연수원 동기인 담당 검사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최 변호사의 또 다른 내연녀 폭로로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한 달여 만에 이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재판의 쟁점은 이씨가 받은 금품의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여부였다. 알선수재죄는 금품이 공무원 직무와 관련된 청탁의 대가라는 점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심은 일부 대가성을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청탁받기 2년7개월 전부터 고가의 선물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벤츠 승용차에 대해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최 변호사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정표(情表)를 요구해 사랑의 정표로 받았다”는 이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단도 항소심과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용카드·벤츠 승용차를 받은 시점과 청탁시점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점, 청탁시점을 전후한 카드 사용액이 평상시 지원액과 차이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대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선일 대법원 공보관은 “검사 아내와 변호사 남편 간의 금전 거래를 처벌할 수 없듯이 내연관계라 해도 동일한 논리로 봐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검사가 언제든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는 변호사로부터 상시적으로 금품을 받은 것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놓고 위헌 시비가 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에 이어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이 터진 뒤 처벌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일자 당시 김영란 위원장 주도로 김영란법 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검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검사가 의사 연인에게 돈을 받는 것과 변호사 연인에게 돈을 받는 것은 달리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넓게 해석했다면 김영란법을 도입하지 않고도 현행 법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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