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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동막골 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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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라, 이것 봐라. 절대 왕정이라고? 지금이 어느 시댄데…." 21세기에 헌법도, 정당도 없이 국가가 존재하고 운영된다고? 정당이 없으니 선거도, 의회도 없다. 독재국가인가. 당연히 '예스'다. 남한 면적의 세 배나 되는 나라에 인구는 234만 명, 몇몇 아랍어 신문 외에 영자 신문이 세 개나 있다. 그러나 카부스 빈 사이드 국왕에 관한 기사는 거의 같았다. 국립 통신사가 제공하는 기사를 전재하기 때문이다. 한 신문사 발행인은 카부스 국왕 통치 35주년을 맞아 '오만판 용비어천가'를 1면에 크게 싣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만인은 이 체제를 용인하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모든 국민이 술탄(국왕)을 사랑하느냐고. 다들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반응이었다. 한 파트타임 운전기사만이 '모든 국민'을 '대부분의 국민'으로 정정해 주었다.

대답하는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강요된 답변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누구도 감시의 눈 같은 걸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했다. 해외를 드나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35년 독재에도 불구하고 반체제 시위 도 거의 없이 나라를 안정시킨 비결은 뭘까. 기본적으로 알라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착한 백성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그들이 원하는 걸 충족시켜 주는 정치였다. 시민들은 "1970년 카부스 왕 취임 이후 이렇게 잘살게 됐는데 존경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즉위 전 전국의 포장도로는 8㎞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속도로는 사막과 산악지대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카부스 왕의 통치 비법은 '동막골' 이장의 그것과 흡사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 병사가 동막골 이장에게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잘 이끌 수 있느냐고 묻자 이장은 "머를 마이 메게야 대"라고 답한다. 선정(善政), 바로 그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8375달러(2003년). 물론 원유와 천연가스가 나라 수입의 80%를 차지하지만 카부스 왕은 석유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북부 해안도시 소하르에 외자를 유치해 종합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미 10년 전에 2020년까지의 경제개발 청사진을 제시하고 계획대로 추진 중이다.

사막에서는 아직도 눈만 내놓은 아내가 직물을 짜고 남편은 양을 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도 휴대전화를 쓰고 있었다. 중동 하면 흔히 떠오르는 테러도 이 나라에선 낯설기 그지없다. 100여 명의 언론인을 불러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들 법했다.

마침 미국 CNN은 며칠 전 자국에서 방영한 북한 참상 다큐멘터리를 중동 지역에 뿌리고 있었다. 공개 처형과 말라 비틀어져 가는 아이들, 자유를 쟁취하자는 유인물 등이 한 시간 동안 소개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카부스 왕이 내년 국경일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심상복 국제담당 리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