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43년 첫 뮤지컬 주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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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김춘식 기자]

"노래는 솔직히 자신이 없거든. 그래서 악보를 빨리 달라고 보채도 감독은 느긋하기만 해. '평상시 재미있게 얘기하듯 노래하면 되니 걱정마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말이지. 정말 걱정돼 죽겠어요."

탤런트 신구(69)씨가 첫 뮤지컬 주연을 맡는다. 다음달 16일부터 열흘간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란 작품에서다. 심술궂고 욕심 많으면서도 결국엔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으로 출연한다. 신구와 노래? 언뜻 어울려 보이질 않는다.

"맞아. 나 노래 잘 못해요. 기껏 한다는 게 술 한 잔 걸치고 노래방에서 '번지 없는 주막' 부르는 정도지."

하지만 뮤지컬이 처음은 아니란다. "1960년대 말로 기억되는데 '포기와 베스'란 작품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어. 70년대 초엔 서울시립극단에서 '우리 여기 있다'란 음악극도 했지. 5년 전엔 '태풍'이란 뮤지컬도 했어요."

그럼 이번엔 몇 곡이나 부를까.

"합창곡이 서너 곡 되지만 독창은 딱 한 곡이에요. 그것도 대단한 가창력이 필요한 건 아니고, 무슨 사설하듯이 대사 전달 위주의 노래지. 설마 내 노래 듣고 싶어서 이번 공연에 오는 사람은 없지 않겠어요?"

신씨는 62년 '소'란 연극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과 TV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인자하면서도 엄격한 아버지로 등장했다. 40여 년 연기 생활에 큰 변신을 가져온 건 2000년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란 작품. 평상시 근엄한 인상과 180도 다른, 신씨의 코믹 연기는 대중의 눈을 확 잡아끌었다.

"난 아직도 코믹하게 연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캐릭터 자체가 '할아버지=인자함'이란 고정관념을 깨서 시청자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이 작품 이후 신씨는 뒤늦게 인기 스타 반열에 오르며 CF에도 출연하게 돼, '니들이 게 맛을 알아'란 유행어까지 만들게 됐다.

서울 양재동에 사는 그는 아침마다 양재천 주변 8㎞ 가량을 걷는다. "제작자들이 작품 만들다 송장 치우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 배우 오래 하고 싶으면 건강 관리는 필수죠."

마흔 살에 담배를 끊었지만, 소주는 지금도 저녁마다 한 병 정도는 마신단다.

"옛날엔 오현경.김인태 이런 친구들이랑 자주 마셨는데 이젠 서로 귀찮아하는 것 같아. 자주 만나질 못해요."

요즘 그는 돌도 되지 않은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아들놈한테 '주말마다 꼭 데리고 와'라고 명령했지. 손자 덕분인지 이번 작품에 초등학교 꼬마들이 많이 나오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나랑 얘기도 잘 통해. 나이 먹을수록 어려지는 게 맞나봐." 문의 02-3448-2285.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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