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포프의 사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소련의 최고지도자「유리·안드로포프」가 오랜 투병 끝에 집권15개월을 3일 앞두고 사망했다.
15개월이라는 기간은 공산권을 영도하고 전세계문제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소련이라는 거국 이끌어감에 있어서는 과도적 과제조차 처리하기 어려운 짧은 세월이다. 따라서 그는 일할 수 있는 체제구축, 방향제시도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지금 그의 정치적 공과를 따지는 일이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통치기간 중 미소관계는「스탈린」이후 최악이라 할 정도로 악화됐고 미국의 군사력이 현저히 증강됐으며 미군의 중거리핵무기가 20분이면 소련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배치됐다는 사실이 간과될 수는 없다.
중공·폴란드 등 공산국가들과의 관계도 다시 소원해졌고 KAL기 격추로 세계여론의 규탄을 받아 외교적으로도 후퇴가 강요됐다.
내부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 경제계획들은 지연되어 성장률은 2%선에 머물려 있다. 하나 성공을 거둔 것이 있다면 KGB 출신답게 반체제 잔류세력을 분쇄한 것뿐인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대 서방관계를 악화시키고 말아 실질적 이득은 없다는 평이다.
집권 초부터 그가 가장 크게 비중을 두어온 과제는 권력기반 강화였다. 그 결과 일부 직계가 정치국원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라이벌인「체르넨코」가 계속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해왔고 그의 사후엔 장례위원장이 되어 가장 유력한 승계자로 주목받을 정도다.
이처럼 그의 재임기간은 새로운 노선의 제시나 이렇다할 치적·변화가 없는,「브레즈네프」체제의 단순한 연장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게 됐다.
앞으로의 관심사는 크렘린의 차기 후계자가 누구이고 지도자의 변경에 따르는 정책의 변화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소련에서는 지도자의 사망이나 추방 없이는 정권교체가 있을 수 없다. 집권자의 임기가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기적인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지도자 선정은 최고권력 기구인 공산당 정치국에서 이루어진다. 10여명의 원로들이 타협과 조정으로 뽑는 것이 상례지만 타협이 성립되기까지는 상당한 권력투쟁이 지속된다. 단일 지도자 선출이 불가능할 때는 집단지도체제가 성립돼 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도체제이고 결국은 독재적인 1인 집권체제로 발전되고 만다.
이 같은 독재정치는 넓은 영토안에 각종 이민족이 모여 사는 러시아의 환경과 공산주의 체질상 불가피하여 이젠 하나의 전통이 돼버렸다. 그래서『러시아인은 광대한 영토의 희생물』이라고 러시아철학자「베르시아예프」는 지적했다.
그러나 그런 체제는 이젠 제도로 정착되어 아무리 강력한 지도자가 급격히 사망한다해도 국가체제가 크게 동요되지는 않는다. 인물중심이 아닌 제도중심 체제의 장점이기도 하다.
지금의 소련사정으로 보아서는 당 관료와 군부, KGB를 구성하는 정치「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정치국에서의 지도자 선정에 반영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물망에 올라있는 인물 중 누가 승계자가 되든 소련의 기본적인 정책구조는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의 정책은「스탈린」시대의 교조주의적 혁명노선에서 「흐루시초프」의 반「스탈린」적 평화공존정책으로 바뀌었다가「브레즈네프」에 와서는 서방과의 공존을 추구하면서 제3세계에 대해서는 혁명노선을 지속시켜왔다. 이 기본구조도「안드로포프」에 의해 그대로 유지됐고 앞으로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만한 하나의 주요 경향은 군부세력의 강화다.「스탈린」과「흐루시초프」때는 군이 완전히 당에 예속된 하부 수단에 불과했으나「브레즈네프」때는 그의 국방력증강정책으로 군부세력이 크게 강화됐다.
「안드로포프」는 자신이 군부의 지지로 집권이 가능했기 때문에 군을 장악치 못하고 이끌려 다닌 듯한 인상을 준다. 이 같은 군부권력의 강화추세는 앞으로의 대미 군사력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속돼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길게 보아 크렘린권력이 군사화하는 경향은 있지만 군부자신이 집권하는 군인통치는 등장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번 승계문제에서 누가, 또는 어떤 집단이 권력자가 될지는 아직 예단키 어려우나 군부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누가 되든 그것은 보수주의나 진보주의, 강경파나 온건파중의 한쪽의 선택이 아니라 줏대 있는 강력한(tough) 인물일 것이라는「브레진스키」의 분석은 경청할 만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