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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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칠순이 가까우신 시아버님께서 2시간30분이나 걸리는 먼길을 갑자기 찾아오셨다. 반가움에 앞서「웬일이실까?」하고 의아해하는 나에게 손주녀석들과 우리들이 보고싶어 오셨다고 했다 신정때는 꼭가서 뵈오려 했었는데 작은아이가 난로에 엉덩이를 데는 바람에 가서 뵙질 못했다며 변명아닌 변명을 했지만 내심 죄송함을 금할수 없었다.
아버님께선 시골생활이 어떠냐시며 만사 불편함 투성이라도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고 건강히 살아가라고 하셨다.
『오늘 저녁일랑 애비와 함께 맛있는것도 사먹고 느이들 좋아하는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러려므나. 외식이 여의치 않거든 물고기라도 해먹으렴. 네가 좋아하는 고기 세근 사다놓았다』 하시곤 서둘러 댁으로 가시기 위해 기차역으로 나가셨다.
하루가 지난 그이튼날 그이와 나는 우연히 달력을 보곤 깜짝 놀랐다.
아버님께서 혹독한 추위도 아랑곳 않으시고 다녀가신 날이 바로 우리 결혼 4주년이 되는 날이 아닌가? 양력생활을 하는 우리가 기억할수 없는 음력으로 말이다.
자식인 우리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단 한번도 기억해 드린 적이 없었는데 자식 결혼일을 기억하시고 다녀가셨구나 생각하니 죄송함과 감사함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돌아오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엔 멋진 선물을 마련해 드려야겠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도계2리 19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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