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박사의 건강 비타민] 폐경 후 급증하는 심혈관 질환, 인위적 호르몬 치료는 되레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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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동훈 박사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60대 중반까지 여성이 남성보다 협심증·심근경색증 등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빈도가 낮다. 하지만 60대 후반으로 가면서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70대 중반 이후 역전한다. 80세 이후에는 격차가 확 벌어진다. 심혈관 질환은 암·뇌혈관 질환에 이어 한국인 사망 원인 3위에 해당한다.

 60대 중반 이후 여성에게 심혈관 질환이 빈발하는 이유는 뭘까. 여성의 평균수명이 긴 이유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동맥경화증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폐경(閉經) 후 여성호르몬의 급감이다. 50세 전후 폐경을 겪은 뒤 15년쯤 지나면서 심혈관 질환이 급증한다. 여성호르몬은 기초대사량을 높여 비만을 막아주고 혈관을 보호해 동맥경화증 발생을 줄인다. 또 골다공증을 막고 피부의 탄력을 유지해 준다. 여성호르몬 덕분에 폐경 이전 여성들의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낮다.

 그렇다면 폐경 여성이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심혈관 질환 증가를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호르몬 치료의 주된 목적은 안면홍조·우울증·가슴 두근거림 등의 폐경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다. 만일 여성호르몬 치료가 심혈관 질환 위험까지 줄여 준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여성호르몬 치료는 받지 않는 게 좋다. 2013년10월 미국 의학회지(JAMA)에 발표된 논문은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호르몬 치료를 권고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몸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과 인위적으로 만들어 투여하는 여성호르몬의 작용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고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 논문은 2만7300여 명의 폐경 여성을 조사했다. 여성호르몬 치료가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일부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가 아니다. 심한 폐경 증상 완화를 위한 단기간의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을 제외하고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한 여성호르몬 장기 치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세계 의학계의 정설이다.

 폐경은 여성 건강의 분수령이다.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폐경 이전(49세 이하) 여성의 고혈압 유병률은 남성의 39%에 불과하지만 50~64세에는 84%에 이르고 65세 이상에서는 122%로 역전한다. 이모(51·여·서울 영등포구)씨는 젊을 때부터 48~49kg의 체중을 유지했고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그러다 4년 전 폐경을 맞은 이후 체중이 늘어 지금은 60kg이다. 동시에 혈압이 오르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해서 병원을 찾았다.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 폐경 이후 여성의 고지혈증은 심각하다. 49세 이하에서는 남성의 63%에 불과하지만 50~64세에 159%로 올라선다. 65세 이상에서는 남성의 약 두 배로 늘어난다. 고혈압·고지혈증은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폐경 이후 여성들의 심혈관 질환 증가 원인은 나와 있으나 아직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비만에 주의하고 흡연·스트레스 등의 건강 위해 행위를 줄여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운동과 채소·과일 섭취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폐경이 되면서 건강의 핵심 ‘방패막이’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건강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동훈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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