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예절 분야도 표준 매뉴얼 도입 … 그래야 경제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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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현

“표준이 기술분야에만 적용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분야의 표준에 투자해야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백수현(66) 한국표준협회장이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한국의 표준 경쟁력 향상 비전이다. 그는 동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대한전기학회장을 거쳐 지난해 9월 표준협회장에 취임했다. 지금도 동국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국내에서 국가표준(KS)이 주로 적용되고 있는 분야는 21개로 압축된다. 전기전자(3348개)·기계(3197개)·화학(3153개)이 압도적인 가운데 최근에는 항공우주(384개)·품질경영(121개)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백 회장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기업 경영 뿐만아니라 안전·예절 분야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 표준화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먼저 거론한 분야는 안전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연락체계나 대피 요령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반복 훈련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유공장·발전소·제철소 같은 국가 기간시설이 대표적이다. 그는 “올해부터 대형 기간시설마다 맞춤형 표준 시스템을 개발하고 직종별로 안전 전문가를 키울 것”이라며 “전문가는 반퇴시대 인생 이모작을 돕는 차원에서 해당 직종의 퇴직자를 대상으로 선발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산 관리에도 표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설비관리 국제표준인 ISO 55000(산업자산관리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에서는 일반 산업을 넘어 군사분야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감가상각 중심의 기업 자산 평가와 달리 환경변화와 경제효과까지 포함하는 종합 평가다. 원자력발전소를 예로 들면 단순히 설계수명을 따지기보다는 평가 시점에서의 경제적 가치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백 회장은 공학자인데도 인문·사회 분야의 표준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앞으로 미래의 경쟁력은 정신문화와 같은 무형의 가치에서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올해부터 공공기관 직원 가족을 중심으로 ‘행복찾기’라는 예절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이전으로 주말 가족이 된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해 표준협회가 나서 가족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자는 취지다. 부모 자식간에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전통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사회의 기본 구성요소인 가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경제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준협회는 13일로 창립 53주년을 맞는다. 백 회장은 “세계적인 표준기구를 보면 어느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융합 표준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표준협회는 지식교육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여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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