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부조화 임옥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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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여앉아 식사를 끝낸후 삶의 냄새가 배어있는『밥상』이 화면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흙으로 밥상을 만들어 석고를 뜬 다음 종이로 눌러서 찍어내고 그 위에 채색을 한 그림이다.
이것이 임옥상씨 (34·전주대교수)의「채색부조」작품이다. 다른 회화작품처럼 평면에 채색을 한것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곡면위에 색칠을 했다.
우리들이 국민학교에 다닐때 입체지도를 만든것처럼 종이를잘게 찢어 물에 담가 불리고 풀을 섞어 반죽하여 이른바「종이흙」이란 것으로 산맥있는 부분은 두텁게, 평야부분은 얇게붙여 도드라지고 파인 입체지형을 만든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다른것은 종이찰흙을 빚어쓴것이 아니라 전주와 한 제지공장에서 화선지 (수묵화 그릴때쓰는 종이)를 만드는 펄프를 구해다가 찰흙을 판자 위에 직접붙이지 않고 흙작업과 석고작업, 그리고 종이펄프로 떠내는 3중작업으로 작품을 했다.
흙으로 작품형태와 똑같은 부조를 만들어 그위에 석고를 개어 발라 굳혀 석고틀을 만든다.
이 석고틀(주물을 뜨기 위한금형과똑같은 원리로 그 표면은 울퉁불퉁한 형태가 된다)에 젖은 솜과 같은 상태의 종이원료를 꼭꼭 밀어붙여 일정한 두께로 다져나간 다음 그것이 건조되었을 때 석고틀로부터 떼어내는 방식으로 부조를 제작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색채로 마무리하는 임옥상씨의 작업은 초현실의 신구상화로 이름지어지고 있다.
지난해「현실과 발언」4회전에서 보인 그의『보리밭』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알알이 잘익은 이삭이 다가올 풍요를 느끼게 하는 보리밭에 어깨를 드러낸 한남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짧은 머리엔 백발이 희끗하고 콧수염은 다듬지도 않았으며 주름과 핏발이 뒤엉킨 얼굴을 보는순간 섬뜩한 느낌도 생기게 하는 그림이다.
이 불쾌한 인물은 누구인가. 기법은 초현실적이지만 오히려 현실을 명확히 인식케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 주인공이 일생을 땀과 함께살아온 숙부라고밝혔다.
도시화 되어가고 있는 농촌을 지키겠다는 마지막 파수꾼이란 것.
임옥상씨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채색부조」도하고 신구상작업도 한다. 새로운 언어, 싱싱한 표현으로 제것을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그림은 정서적·심미적인 객체가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의식을 깨워야하는 주체』라고 생각, 『나는 격변하는 시대의 증인으로서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야하고 앞날을 준비해야할 주인으로 그림을 그린다. 살고 있는 이곳, 이역사속에서 작업한다』고 외치고 있다.
외래사조에 빠지지 않는 우리것, 제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임옥상씨는 미술평론가 유준상씨에 의해 81년에 이어 올해도「83문제작가」로 뽑혔다.
유씨는 임옥상씨를 다시 추천하는 이유를『그의 영상이 실용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문맥과 관련지으면서 제기되고 있다』고 내세웠다.
임옥상씨의 화면은 가시의 세계와 불가시의 세계를 함께 제시하려는 이중구조적 세계를 보이고 있다.
관례화 통념화된 시각경험으로서의 객관적인 물체처럼 원래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회화적으로 재현하고 있는게 아니다.
그는「보는것」과「아는것」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81년에 발표한 『땅V』처럼 녹색의 초원 한부분을 불도저같은 메커니즘으로 밀어내어 붉은적토가 드러나게한 상황,『땅Ⅱ』처럼 삼원법을 빌어쓴 동양화의 한 유형을 배경으로해서 전면에 용출된듯한 적토가 이중구조의 세계를 실증해주었다.
자연·신사실·초현실주의의 기법을 총동원, 농촌·도회주변·도심을 이중구조로 60m 두루마리에 펼치는 『신한국풍속도』가 완성되면 (현재50%진척) 그의「미술언어」가 가지는 이미지의 힘을 읽을수 있을것 같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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