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법안 375건 소요예산 5년간 253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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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내놓은 8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삭감안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17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2004년 6월 이후 지난 9월 30일까지 92조원(5년 추계 기준)의 예산이 필요한 법안들을 제출했다.

당론으로는 감세를 하자면서 정부 지출을 대폭 늘리는 법안을 쏟아놓은 것이다. 법안 가운데는 제대하는 모든 현역사병에게 퇴직금으로 288만원(중사 최저 호봉 3개월치)을 지급하자는 법안(윤건영 의원 발의)까지 포함돼 있다.

열린우리당 오영식 원내부대표는 4일 고위당정협의회가 끝난 뒤 "감세는 매년 재원의 감소를 초래하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을 공격한 발언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의원도 17대 국회에서 모두 38건의 감세 법안을 발의했다. 택시에 공급하는 LPG에 대한 특소세를 2008년까지 면제하자는 선병렬 의원의 조세특례법안 등 주로 특정 계층을 겨냥한 감세 법안들이다.

감세안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한 가운데 여야 의원 모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과 감세 법안을 동시에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17대 국회의원들이 9월 30일까지 발의한 법률안 2176건 가운데 예산추계서가 첨부된 375개 법률안을 분석한 결과다. 법률안을 제출한 의원들이 추계한 소요액을 전부 더하면 5년간 253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23개 법률안은 이미 원안 또는 수정안 형태로 본회의를 통과, 5년간 11조4000여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게 됐다.

의원입법 가운데는 국회 전문위원이나 국회 예산정책처가 실현 가능성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법안도 적지 않았다.

또 재원의 규모와 확보 방안에 대해 정확히 조언해 주는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대 김민전(정치학) 교수는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제시되지 않은 법률에 대해서는 통과를 유보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며 "의원입법안에 대해 정확한 재정추계를 해줄 수 있도록 국회 예산정책처의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이 필요한 법안 가운데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168개로 법안이 시행되면 5년간 104조8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계됐다. 감세를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도 91조7600억원이 소요되는 163개 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민주노동당은 49조7000억원(32개), 민주당은 6조5000억원(10개), 자민련은 1조1000억원(1개)이 필요한 법률안을 내놓았다.

한편 같은 기간 발의된 조세 관련 법안 157개를 분석한 결과 감세 법안이 113개(72%)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세수추계서를 첨부했거나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는 법안은 9건에 불과했다.

17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숫자는 9월 말 현재 2176건으로 16대 국회에서 제출된 의원입법안(1912개)을 넘어섰다. 계명대 윤영진(행정학) 교수는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의원입법의 증가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정부 예산은 물론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해서도 예산 소요 여부를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철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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