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 첩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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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절기는 벌써 봄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는「셸리」의 시도 있었다.
칠십 이후에서는「샛바람에 얼음 녹고」(동풍해동),「땅속벌레 꿈를대고」(칩충시진),「물속고기 뗘 오르는」(어상빙)때들 입춘이라 했다.
동지 지나 40일. 해도 벌써 저만큼 길어졌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음산하고 추운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바람결은 춘기를 못 속이는 듯 매서움이 없다.
천문학상의 봄은 춘분에서 시작된다. 양력으론 3월21일부터 하지(6월21일)까지가 봄이다.
입춘과 춘분의 거리는 40여 일이나 된다. 마음과 피부의 거리라고나 할까. 동양인의 봄은 분명히 피부로 느끼기보다는 생각 속에 먼저 와 있다.
한자 봄「춘」의 형상은 사뭇 회화재적이다.「춘」자의 고형은 풀(초)과 해(일)와 둔, 세 글자의 합자.「둔」자는 땅(일)위에 새싹이 솟아오르는 형상. 자연 그대로 땅 속에서 새움이 돋아나는 모양을 따서「춘」이라고 했다.
그 점에서는 영어의「스프링」도 마찬가지다. 용솟음 친다, 도약한다는 뜻이다.
로마신화는 봄의 유래를 농곤 모녀의 세화 속에서 찾고 있다. 농사의 여곤「케레스」에겐 「프로세르피나」라는 귀여운 딸이 있었다. 그 딸이 하루는 들에서 놀고 있는데 느닷없이 땅이 갈라지며 흑마의 금마차가 나타나 그를 태우고 지하의 세계로 사라졌다.
「케레스」여신은「주피터」대신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청했다. 딸은 지옥의 신「플루토」곁에 있었다.
그동안「플루트」는「프로세르피나」에게 석류(석류)4개를 먹여놓고 있었다. 그것은 지상으로 돌아갈 경우 오래도록 살지 못하게 하는 효험이 있었다.
결국「프로세르피나」는 1년 중4개월(석류수대로)은 지하에서, 나머지 8개월은 지상에서 사는 허락을 받았다.
「케레스」의 딸이 지상에 있는 동안은 수목이 무성한 가운데 풍요를 누릴 수 있고 그가 지하로 돌아가는 4개윌은 삼라만상이 얼어붙는다.
우리나라 세시에서도 입춘은 농사준비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 날이 되면 조정에선 제술 관에게 명하여 하비하는 시를 짓게 했다. 그 가운데 잘된 시구는 연잎이나 연꽃의 무늬를 그린 종이에 옮겨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등에 붙였다.
춘 첩자를 통해 농사를 축원하는 행사였다.
여염집의 문병엔「입춘대길 국태민안」이 흔한 글귀로 나 붙는다. 글의 뜻은 소박해도, 그 속에 담긴 소망은 천언만어보다 간절하다.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기대가 또 뭐가 있겠는가.
요즘은 그런 것 하나 내붙일 수수한 대문도 없는, 살벌한 철책과 철문뿐인 세상이 되었지만, 춘 첩자의 소망만은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없다.
입춘대길 국태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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