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칼럼] X세대의 반퇴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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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나'는 1968년생이다. 나라 전체로는 83만8619명의 같은 나이 친구들이 있다. 올해 48세(만 47세). 떡국 두 번만 더 먹으면 50대가 되는 나이다. 마음은 20대, 몸도 30대라고 여겼는데 벌써 50을 바라본다. 68년생은 한국판 X세대의 맏형이다. 막내 동생은 74년생이다. 한국에서 X세대로 불리는 인구는 68년부터 74년 사이에 태어난 604만명(국내 인구의 12.1%)이다. 연평균으로는 86만명에 이른다. X세대의 막내인 74년생도 올해 벌써 마흔둘이다. 그러고보니 한국의 40대는 X세대가 주축이 되고 있는 셈이다.('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X세대는 이미 현실이 된 반퇴시대(퇴직해도 은퇴하지 못하고 계속 일하는 시대)에 가장 힘겨운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왜 그런지는 미국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에서 1990년대 처음 사회적으로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X세대는 1965~1976년에 태어난 인구집단으로 교육은 많이 받았지만 베이비부머보다 고용률이 낮았다. 한국에서 1차 베이비부머가 취업이 잘 됐지만 그 다음 세대로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나 같은 상황이다. 직장에 들어가도 X세대는 늘 1차 베이비부머의 뒤를 따라가면서 승진이 늦고 고용조건도 나빠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미국의 X세대는 직장에서 위계질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미래에 대한 의욕도 적었다.

한국의 X세대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도성장이 끝난 시점에서 40대에 진입했다. 전통적으로 40대는 가장 자산을 많이 불릴 수 있는 연령 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07년 이후 주택시장은 침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집값의 절대값은 여전히 비싸다. 1차 베이비부머(55~63년)에 비해 모아놓은 자산은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저성장ㆍ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자산을 모으고 굴리는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직장인이라면 앞으로 60세 정년 체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정년이 늘어났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다른 리스크들이 적지 않다. 우선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상화하고 있다. 이 여파로 고용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급여가 과거 고도성장시절처럼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X세대의 노후 준비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정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앞 세대보다 정년이 늘어난 만큼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부족한 자산을 보충하고 반퇴를 준비해야 한다. 또 하나의 리스크는 ‘은퇴 크레바스’가 앞세대보다 더 길어졌다는 점이다. 68년생은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4세부터다. 69년생부터는 65세로 더욱 늘어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60세까지 정년을 채워도 연금이 나올 때까지는 5년 간의 공백이 발생한다. X세대에게 반퇴시대를 준비할 골든타임은 많이 남지 않았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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