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베 총리, 메르켈이 말한 '화해의 길' 직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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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메시지는 선명했다. 메르켈은 지난 9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를 총괄(정리)하는 것이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간) 화해의 전제가 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앞서 열린 강연회에선 일본에 과거사를 직시하라고 주문했다. 독일이 반성으로 전쟁범죄를 일으킨 나치와 철저히 단절했기 때문에 전쟁 피해국이 독일과 비로소 화해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음을 강조했다.

 일본 지도자의 면전에서 올바른 역사관이야말로 불행한 과거사를 정리하고 화합의 미래로 가는 핵심임을 거침없이 지적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26일 “인류에 대한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며 거듭 사과한 메르켈답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베 총리는 침략의 과거사와 단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합리화하려는 듯한 발언과 행동을 계속해 왔다. ‘패전일’을 ‘종전기념일’로 표현하는 것도 모자라 오는 8월의 아베 담화에서 ‘침략 전쟁’ ‘식민지 지배’란 표현을 삭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여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실 평화주의의 전통이 강하다. 전후 70년간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가꿔 왔다. 일본 국민도 이를 지지한다.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지만 일본 내 여론조사를 보면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다. 따라서 일본이 존경받는 평화 국가로 남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베 총리가 추구해 온 길은 동북아시아 이웃 국가는 물론 일본 국민의 의사에도 반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메르켈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리하르트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이 유럽의 종전일인 1945년 5월 8일을 ‘해방의 날’로 불렀으며 이는 나치의 ‘만행’으로부터의 해방,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로부터의 해방, 또한 문명의 ‘파괴’로부터의 해방이었기 때문”이라는 메르켈 발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올해로 70년을 맞는 2차대전 종전은 동북아 국민 모두에게 군국주의의 ‘만행’과 침략전쟁의 ‘공포’, 문명 ‘파괴’에서의 해방이라는 공통의 역사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와 단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이 어물쩍어물쩍 책임을 피하려 하지 말고 역사적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고, 동북아가 평화를 지향하고 화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이웃 나라는 이제는 화해를 말할 수밖에 없다. 과거사에 얽매여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교착상태를 어떻게든 타개할 때다. 종전 70년과 한·일 수교 50년을 맞는 올해는 서로 화합하는 동북아로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화해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메르켈 총리는 분명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