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시험과 의사 자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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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의사 국가 시험의 합격률이 전례 없이 낮아진 사실은 전문 의료인들만이 아니라 일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14일 보사부가 실시한 시험에는 의대 졸업생과 졸업 예정자 1천6백16명이 응시, 그중 22%인 3백55명이 합격을 못했다.
이는 지난 4년간의 합격률 88∼97%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낙방한 사람들 가운데 2백60명은 「과락」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불합격자가 예년보다 3배 가량 많이 나온 직접적인 이유는 시험 과목이 2개 늘어났고, 5개 과목에만 적용하던 과락을 15개 전과목으로 확대한데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의사의 수급이라든지 의사의 자질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다른 어느 직업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한사람의 의사가 되는 길은 매우 어렵고 까다롭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그 과정은 더욱 어렵고 한층 까다롭다.
그 동안 의사 수급 계획을 놓고 관계 부처인 보사부와 문교부간에 보조가 맞지 않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대한 의협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전체 의사 수는 1만7천60명, 평균 인구 2천3백45명에 의사가 1명 꼴이다. 숫자만을 보면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뒤져 있다. 게다가 인구 자연 증가, 의보 확대 등으로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의사를 양산할 수도 없는데 의사 수급 정책의 딜레머가 있는 것 같다.
의대의 신설이나 신입생 정원에 관한 당국의 방침이 해마다 바뀌어 「주먹구구」란 빈축을 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고충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해는 의사 시험이 너무 어려워 낙방생이 많이 나고 어느 해는 응시자마다 거의 합격했다면 이는 형평의 원칙이나 기회 균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것이 의료 수급 정책의 일관성 결여 때문이라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러나 우리의 보다 큰 관심은 의사의 자질 문제에 쏠리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남발되었던 의대의 신설로 의사들의 기본적인 자질이 떨어지지 않았나 의심하는 소리가 나온 지는 오래된다. 기초 의학 분야의 교수 요원이 태부족인 현실에서 의과 대학 교육 과정의 충실성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추세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의과에 지망하고는 있다지만 이들을 가르칠 실력 있는 교수요원이 없다면 일정 수준의 의사 양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우기 의료 기술이나 지식도 다른 과학·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몇년을 주기로 배가되고 있지 않은가.
최근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종합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이나 의사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그 근원을 찾아보면 의사의 질이 고르지 못한데 있다.
대학 병원의 경우 의과 대학 6년에 인턴, 레지던트 등 소정 과정을 거친 의사들이 계속적인 임상 실습을 통해 실력을 늘리고 있는데 비해 일부 개업의들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의사들간에 현격한 질적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병원에의 환자 러시를 정책적으로 막아보려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실효를 거둘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의사의 자질 향상이 중요하다고 해서 의사 국가 시험을 어렵고 까다롭게 하는게 능사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의과 대학 교육에서부터 국가 시험을 거쳐 한사람의 의사가 되고 다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과정에서 다른 어느 나라의 의사와 비교해서도 그 자질이 떨어지지 않는 실력 있고 신뢰가 가는 의사들을 양성하도록 당국의 장기적이며 합리적인 대책을 이 기회에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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