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전설 한국에서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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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디오르·할스톤 등 유명 디자이너 작품 50점 아시아 첫 나들이

20세기 초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다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 껏 살린 '뉴 룩(New Look)'의 창시자로 불리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1970년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이브닝 드레스로 패션계를 평정한 미국 디자이너 할스톤 ….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24일 막을 올렸다.

제목은'레인보우: 컬러와 패션(She's Like a Rainbow: Color and Fashion) FIT 의상박물관 컬렉션/ 오방색전'.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1층 로댕 갤러리에서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삼성이 설립한 디자인학교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가 개교 10주년을 맞아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패션 명문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와 함께 하는 행사다. 모두 5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FIT 의상박물관의 소장품이 아시아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대연 한국패션협회장 겸 SADI 학장은 "뉴욕에서 FIT의 의상박물관을 둘러볼 때마다 자료로만 패션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세계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행사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글=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8가지 색을 따라 보는 서양의 대표 의상들

작품들은 시대순이 아니라 색에 따라 분류해 전시했다. 1관에서는 서양의 기본색 개념인 8색(흰색.검은색.빨간색.파란색.노란색.녹색.오렌지색.보라색)에 따라 FIT 의상박물관에서 선정된 50점의 의상이 눈에 들어온다. 1830년대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날씬한 허리와 풍성한 소매를 강조한 작자미상의 녹색 드레스부터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발리의 2003년작 데님 작품까지 시대에 따른 색감과 스타일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놓았다.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의 96년작 흰색 이브닝 드레스의 실루엣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포드는 사업 부진으로 나날이 기울어 가던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를 한숨에 살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바로 그 옆엔 역시 여성스러움의 대명사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55년작 드레스가 자리하고 있다. 구찌의 드레스와는 달리 흰색 꽃을 하나 하나 붙인 듯한 디테일이 화려한 머메이드 스타일(인어의 하체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이다. 같은 흰색이라도 순수한 흰색을 사용한 구찌의 드레스와 달리 아이보리 빛 원단을 사용하고 치마 끝 단에 핑크색을 뿌려준 디오르의 드레스는 디자이너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의 해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의상은 2점이 전시되어 있다. 1926년 만들어진 검은색의 튜닉 스타일 이브닝 드레스와 59년 작품인 빨간색 트위드 소재의 스리 피스 정장이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을 억누르지 않는 편안한 재단이지만 결코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코코 샤넬 특유의 기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트위드 소재는 지금도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대표적 스타일로 일컬어지는 만큼 그 원형을 보는 것이 즐거움을 더 한다.

한국의 색 '오방색'의 개성 넘치는 해석

자칫 외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전으로 흐르기 쉬웠던 전시회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개성 넘치는 의상들로 균형감을 갖췄다. 서양의 작품들을 여덟 가지 테마색에 따라 분류했다면 2관에 전시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 25점은 한국의 전통색 개념인 '오방색'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오방색이란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적.청.황.흑.백 등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한국인의 삶을 지배해 온 색감이다.

SADI의 교수이자 유명 디자이너인 김동순(울티모), 김석원.윤원정(앤디 앤 뎁),박은경(thru 박은경), 서정기(서정기 컬렉션), 정구호(KUHO) 5명이 각 색깔에 맞는 의상을 1점씩 내놓아 모두 25점을 구성했다.

서정기 디자이너는 "같은 파랑이라도 스타일과 소재, 색감 등이 디자이너마다 차이가 있다.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다양한 오방색의 해석인 셈이다"고 말했다. 녹색 빛이 감도는 파랑에서 남색에 가까운 파랑까지 파란색을 보는 디자이너들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SADI 운영위원 겸 FIT 행정실 디렉터인 김영자 교수는 "컬러를 테마로 한 이번 전시는 FIT쪽에서도 참신한 기획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가능하다면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포함, 똑같은 개념으로 뉴욕 전시를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일반 5000원, 초.중.고생 3000원이며 20인 이상은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이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 휴관. 02-2259-7781.

글=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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