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풍조」 업소의 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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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7개월 간 신규 허가가 전면 중단되었던 숙박·유흥·위락시설 업소의 허가가 재개되었다. 원래 이들의 신규 허가 중단은 지난해의 과도한 부동산 투기와 더불어 호화·사치풍조를 조장하는 불건전한 투자의 연쇄반응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반론으로 얘기하자면 이 같은 유흥 접객업소의 인허가와 관련된 시 행정은 사회의 전반적인 자율화 추세에 비추어 되도록 규제의 범위를 줄여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 간섭의 배제와 자율화는 그 결과가 공공의 이익과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암묵리에 내재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험으로 보면 이 같은 전제는 거의 무시 되었을만큼 크나 큰 사회적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해에 과잉 살포된 돈의 흐름과 투기적 사회분위기에 더하여 호화· 사치 일변도의 소비풍조가 생산적 투자를 압도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거·상업지역을 가릴 것 없이 초 호화판 유흥업소와 접객·위락시설 등이 다투어 세워지면서 늘 건전한 소비 풍조의 만연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았다. 지난해 5월 이후의 이들 업소에 대한 신규허가 중단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다수 시민들에 의해 납득된바 있었다.
행정 간섭의 배제와 자율화 시책이 경우에 따라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7개월이 지난 지금 비록 강남지역에 국한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신규 영업허가를 재개한다는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스런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당국의 판단은 그동안의 규제로 투기적 분위기가 거의 가라앉았고 만연했던 소비 풍조도 진정되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그 같은 판단이 일견 타당성을 가질 만큼 인플레 분위기가 누그러든 점이나 부동산 투기 과열이 진정된 점은 인정된다. 그리고 자유로이 생업을 추구할 권리를 장기간 규제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사치성 업소의 신규허가 재개는 시민들로 하여금 지난해의 불유쾌했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든다. 우후죽순처럼, 주거 지역에까지 각양의 접객업소가 난립하고 초대규모의 갈비집과 호사를 다한 목욕탕들이 다투어 생겨나던 기억은 아무래도 탐탁하지 않다. 이런 부류의 서비스 산업 번창은 물론 사회의 잠재적 수요를 예견한 불가피한 변화라 하지만 지금의 경기 국면으로 보아 자원의 배분을 잘못되게 하고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 소지가 높다.
또 서비스산업은 그 특징에서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측면이 강하다. 서비스 산업의 번창이 고용과 소득을 늘려 경기를 부추기는 효과가 없지 않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생산적 투자의 잠식이나 소비 확대에 따른 외자 낭비가 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업소의 신규 허가 재개가 지난해와 같은 무분별의 재연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행정의 감시와 지도력이 어느 정도 발휘돼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의 현실은 행정보다 더 강력한 견제 기능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그런 기능의 일부를 유보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도시 변두리 지역의 급수 난을 그대로 방치한 채 도심에는 대규모 사우나 설비를 계속 내준다면 이는 행정의 자율이라기보다 행정기능의 외면을 의미할 뿐이다. 또 이런 유흥업소의 허가 재개가 수도권 인구 소산 책을 역행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허가 원칙과 기준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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