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최명희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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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KBS 9시뉴습니다. 오늘 아침 방송한 부산 대아호텔화재로 앵커맨이 뉴스를 전하는 화면 한 귀퉁이로 화염에 싸인 호텔그림이 나타난다.
호텔창문마다 불길이 연기와 함께 번쩍거리며 피어올라 화재사건을 더욱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최명희양(25·KBS 컴퓨터그래픽실)이 지피아스(XIPHIAS)라는 그래픽용 컴퓨터를 사용해 만든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란 선의 굵기·도형·색상 등 개발돼 있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것 종이는 화면 붓은 전자펜이 대신한다. 물론 물감도, 팔레트도 필요없다. 단지 더 있다면 키보드가 있는 정도다.
최양이 컴퓨터 그래픽에 손대기 시작한 것은 약3년전. KBS가 일본으로부터 문자발생기 CGAOO용 도입해오면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채용됐다.
『학교(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모두 인쇄를 의한 그래픽이였지 전자매체를 이용한 디자인은 해본적이 없어서 한편 신기하면서도 겁도 많이 났어요.』
키보드를 누르면 나는「삑삑」하는 전자음 소리가 집에 돌아간 후에도 귀에 쟁쟁거리는가하면 방송중에는 키보드에 얹은 손이 덜덜 떨리고 방송화면조차 보기가 겁이 났다는 것.
그래서 그는 지금도 첫 작품인「한·인도네시아유전 공동개발구역」지도그림을 잊지못한다. 3년동안 그가 그려낸 그림수는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그중 9시뉴스·날씨·KAL기격추·대아호텔 화재 등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컴퓨터 그래픽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에 비해 발색이 좋고, 정밀하고 정확한 그림을 그릴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항상「움직이는 그림」이 되지않으면 1백%의 효과를 얻기가 어려워요.』그래서 그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고민한다고 했다.
그가 그림을 디자인할때 추구하는 세가지 가치는 ▲그림의 단순화 ▲풍부한 내용 ▲시청자들의 재미. 방송에 내는 그림은 내용을 가장 압축시켜야하며 보는 이가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그가 즐겨 사용하는 애니메이션을 바로「재미」를 주기위한 방법중의 하나. 그러나 아직도『「재미」를 해결하는데는 왕도가 없는것 같다』며 웃는다.
그의 작품에 대한 모니터는 아버지(최원택씨·국재화재보험근무)가 도맡고 있는데 매우 신랄해 변명(?)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고.
작품에 대한 어려움 외에 가장 큰 어려움은 출퇴근시간이 비정상적이라는 것. 아침 프로에 급히 그림이 필요할때면 새벽에도 나와야하고 1년의 반은 일요일도 없이 지내야한다.
이런 격무로 작년엔 이틀간이나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는데『피곤하다가도 방송국에만 들어서면 활기가 난다』는 열성파다.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친구들 만나기도 어렵다는데 그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은 쇼핑. 35만원의 월급을 받아 등록금(이대대학원)으로 일부를 비축해 두고 용돈으로 쓴다.
지난 2년간 계를 들어 5백만원을 모아둔 것이 그의「재산」의 전부라고.
1남2여중 맏이인 그를 두고『올해는 시집가라』는 주문이 주위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공부를 더해 외국의 수준만큼 끌어올려 보고싶다』고 포부가 만만.
최양은『외국처럼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교육기관이 생겨나고 실습을 통해 디자이너가 컴퓨터와 쉽게 친해질수 있는 여건만 갖춰지면 국내에서도 컴퓨터 그래픽이 비디오 아트로 뿌리내릴수 있을 것』이라고 선구자답게 긍정적 미래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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