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우리의 흥과 멋을 찾아…|임석재씨 수집『민요감상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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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 열아홉살 먹은 과수가 스물 아홉 먹은 딸을 잃고 금강산으로 찾아갑니다.』
노학자는 소리를 높여 곡목을 소개하며 녹음기의 스위치를 넣었다. 순간 까르르 웃음이 터지던 좁은 지하실 극장안은 뱃속에서 토해내는듯한 구슬픈 퉁소소리에 숙연해진다.
아이구 답답 내 딸 봉덕아, 날 버리고 어디를 갔나. 어미가 슬피 울며 딸을 찾는다. 마침내 둘이 만나자 퉁소는 두개의 음을 동시에 내어 흐느낀다.
반가움도 잠깐, 어미는 죽고 상여가 나간다. 아이고 어머니 울어머니, 흑흑 3년만 더 살았으면 효도를 절로 하갔다. 언제 또 볼께라유 우리 우리 어머니.
한편 흥겨운 극조에 절박한 호소를 담은 퉁소가락은 정면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은 팔순의 임석재교수(81·전서울대)와 저마다 조그만 나무토막을 책상삼아 끌어안고 숨죽여 귀를 기울이는 50여명의 젊은 학생들 사이를 애잔하게 감돌았다.
『이 곡조는 내가 지난 68년8월2일 전라도 강진에서 녹음한 것입니다. 당시 58세된 김갑동이라는 장님 풍각장이가 불어주었어요. 아마 이렇게 좋은 음악은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녹음한 이가 없을거예요, 나 밖에.』다시금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임교수는「거문도뱃노래」 「함평질꼬내기」「보리타작」「상여소리」「익산 방아소리」 등을 계속하여 들려주었다.
민속학계의 원로이신 임교수는 작년 12월4일부터 4회에 걸쳐 서대문밖 애오개소극장에서 평생을 두고 전국을 다니며 모아온 민요중곡조와 가사가 좋은 것을 골라 녹음테이프 여섯시간분량을 공개하였다. 제주도의 멸치후리는 소리에서 시작하여 전라 경상을 지나 함경도 북청「삼삼기」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민요와 무가 등을 발표한 것이다.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직업적인 가수가 아니다. 동네에서 소리깨나 하고 풍류있는 농부요 뱃사람이자 개똥이 엄마일 뿐이다 그러나 그네들의 옥꾸성은 멋들어지고, 소리는 힘이 있고,가사는 소박한 생활감정을 담고 있다.
『쌀보리냐 늘보리냐 늑씰늑씰 때려주오, 아아 어화여루저 건너 갈미봉 비물어 온다, 우장쓰고 어서 하세.』 일하는 동작에 맞추어 흥을 돋우면서 능률도 높이는 보리타작노래가 있는가 하면 『날씨가 좋아서 빨래질을 갔더니만 모진 놈 만나서 돌베개 비었네, 덩기 둥당에 둥당덩.』노골적인 가사는 주로 유흥요에 많다.
『영감아 영감아 무정한 영감아, 육칠월 만물에 메뚜기뒷다리에 치어죽은 영감아.』
애조띤 곡조의 김매는 소리를 들으며 학생들은 웃었다. 그러나 그 가사속에서 슬픔가운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옛사람의 여유를 배운다.
하루 저녁에 녹음 2시간분을 준비하면, 다 듣는데는 다섯시간도 빠듯하다.
민요에 얽힌 민속을 설명하고 녹음한 상황, 창자들을 소개하는 소위 아니리가 창보다 훨씬 길어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마지막 아니리는 이렇게 끝났다.
『민요는 생활에서 우러난 노래입니다. 모판에서 논에 옮길때는 모뜨는 노래를 부르고, 모심기 김매기소리에 맞추어 농사를 짓지요. 그러나 요즘 누가 손으로 농사를 합니까. 기계를 사용하지요. 생활이 바뀌니까 민요도 없어지는 게지요. 그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흥과 멋도 사라지는 거구요.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여러분 세대에서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갑자기 나는 아랫배에 힘을 꾹 주고 질꼬내기 뒷소리를 한바탕 질러내었다. 아헤 헤헤헤야 헤헤헤라, 얼싸 지화자자 어얼싸 좋다. (이화여대강사·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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