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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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년도 대학 입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의 하나는 명문대 인기학과의 판도가 바뀌어 전자공학과·미생물학과 등 이른바 「첨단」학과가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전자공학과는 커트라인 3백12점 (1등급 기준)을 기록해 법사·의예과를 누르고 전국 최고 합격선의 간판 학과가 되었으며, 연세대·고려대에서도 전자·전산학과·유전공학과 등이 새로운 명문학과로 등장했다.
첨단 과학기술 관련학과에 대한 우수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음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장래를 내다 볼 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기술 인력을 많이 양성해야 한다는 소리는 높았다. 국내 자원이 빈곤하고 자본도 빈약한 나라가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기 위해서 풍부한 인적 자원을 고급 기술 인력 화 해야함은 너무도 당연한 요청이었다.
그동안 대학에서 국가의 미래상이나 시대의 진운을 헤아려 과학 교육의 낙후 상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현재의 경제 성장이 그런 노력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아직 너무나 미흡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관계 기관이 추산한 바 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고급 기술 인력의 수요는 약5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만한 고급 기술 인력을 확보하려면 지금부터 자연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늘려야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이 분야에 몰리도록 적극적인 유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지난 55년에 만든 「대학설치 기준령」은 자연계 대 인문계의 비율을 6대 4로 못 박았으며 70년대 들어 자연계의 비율이 60%를 육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자연계 대학생의 증원에 역점을 둔 정책은 슬그머니 후퇴, 자연계 대 인문계의 비율은 80년의 55.2 대 44.8에서 84년엔 43.3 대 56.7로 해가 갈수록 자연계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물론 학문이 발달하고 전문화 세분화하면서 자연계·인문계를 확연히 구분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가령 경제학만 해도 사회과학의 한 분야지만 그 경지가 깊어지면 고등수학을 알지 못하고는 풀 수 없게 된다. 즉 수학을 응용한 수리 경제학을 두고 사회과학으로 분류할 수만도 없게 되는 것이다.
뿐더러 외국의 선진 기술 도입에 어문과 같은 인문계 학문의 역할이 큰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고도의 과학 기술이 결국 한 나라의 사회·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과학·기술에서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면 우선 과학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한다. 우리가 자연계 대 인문계의 비율이 6대 4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인류사상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소련에서 자연계 학생의 비율이 79년에 이미 65%를 넘어 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가 된다.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대만이나 싱가포르 등에서도 자연계 학생이 6대 4 정도로 인문계를 능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아도 자연계 학문의 전공은 보다 확실히 장래를 보장해주는 추세에 있다. 인문계 실업자가 많은데 비해 자연계 실업자가 훨씬 적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인문계 박사들이 취업을 못하고 있는 일을 우리는 얼마든지 알고 있다.
대학에서의 자연계 중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대학원 교육의 충실화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생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학원 교육의 비중은 한결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대학에서의 인문대 자연의 비율은 대체로 55대 45 수준이다. 그러나 대학원에 가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의 대학원에서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37%며 나머지 63%가 자연계고, 특히 이학이 10.8%, 공학이 37.0%에 이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미국보다 기술 개발 적응력이 강하고 대량 생산 기술에서 앞선 이유는 이런데서 찾을 수 있다.
고급 기술 인력 양성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연계를 전공하는 우수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반기면서 그런 분위기가 한층 확산되도록 정부는 가능한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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