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의존의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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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경제 운용은 물가 안정과 국제 수지 개선에 중점을 두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제시되었다. 이런 기본 방향은 성장중심의 의욕적 계획에 익숙했던 눈으로 보면 다소 보수적이며 방어적 자세로 비쳐질 수 있으나 80년대 이후의 내외 여건을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특히 국제 수지의 문제는, 우리가 비록 개방 사회를 지향하고 우리의 신인도를 주장할 수 있어도 그런 주관적 판단이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요인들에 의해 쉽사리 교란되고 충격을 입을 수 있음에 언제나, 주목해야 한다.
더우기 우리의 외채 잔고는 지난 연말로 이미 4백억 달러 수준을 넘어섰다. 우리의 국민총생산에 비하면 이는 50%를 넘는 수준이다. GNP의 절반 이상을 외채에 의존하고 있는 정제는 비록 미리 계획된 것이긴 하지만 결코 주의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외채 문제를 얘기할 때 언제나 빠지기 쉬운 함정은 상대적인 평가의 맹점이다. 우리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른 몇 나라들이 우리를 안도시키거나 경상 외화 수입에 비교한 원리금 상환 비율이 아직도 건전한 수준이라는 평가는 경제의 동태적인 특성으로 보아 긍정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엄밀히 판단하자면 이 두 가지 가설은 모두가 항상 옳지는 않다.
우리보다 더 심각한 몇 나라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한계점에 이르러 있음을 보게 된다. 이미 더 이상 외채를 부담할 능력이 없어진 중남미 몇 나라들은 이제 정상적인 자본 거래 상대로서의 자격을 잃고 있으며, 남은 것은 비상의 구제조치 뿐이다.
우리는 이들 나라에서 몇가지의 교훈을 얻게 된다. 즉 외채란 일단 안정 수준을 넘으면 그 자체의 관성으로 관리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기 쉬우며 국제자본의 생리상 그것은 언제나 가속도를 가진다는 점이다.
후자의 원리금 상환율 지표도 언제나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그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되어 온 것은 70년대까지의 세계 무역과 국제 금융 환경이 안정되었던 탓이었다. 정상적인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안정되었을 때의 외채 부담률과 오늘의 그것은 판이하다. 상품 이동도 그렇지만 특히 자본 이동은 80년대 이후 매우 불안정하다.
국제 고금리와 개도국들의 외채 위기가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나 손쉽게 빌려주던 전주들은 이제 누구에게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국제 수지 구조 자체도 결코 건강한 구조로 보기 어렵다. 무역 수지의 면에서는 지난해 원유가 인하로 우리는 큰 부담을 덜 느끼며 지냈다. 이런 사정은 다행히 올해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기저인 안정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의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히 남는다. 수출은 올해도 순조롭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나 가득률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보호주의와 경쟁의 격화 때문이다. 원유와 함께 안정을 보였던 원자재 시세가 올해는 오름세로 반전될 것이고 이는 수입 부담 증대를 의미하게 된다.
자본 수지에서도 계속 신중해야 할 요인이 남아 있다. 외채 잔고 중 1백여억 달러가 단기 외채라는 사실은 언제나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국제 금융의 경색기에는 이 부분이 고리의 강도를 결정하는 취약점이 된다. 그 동안 우리는 단기 외채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이해질 만큼 대외적 신인도가 높았으나 중남미 외채위기 이후 그런 사정도 변하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국제 경제 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명해진다. 절대적인 외채 의존도를 낮추는 종합적인 관리 대책이 불가피하며 이는 곧 국내 저축율의 지속적인 증대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물가 안정과 국제 수지의 개선은 결국 표리 관계를 이루는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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