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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월11일.
「무초」 대사가 와서 대통령이 「리지웨이」장군을 만나는 것을 주선하기 위해 비행기로 대구에 가겠다고 말했다. 의전상 주재대사는 그와 같은 회담을 채비하도록 되어있다. 틀림없이 「맥아더」장군은 어느 정도 무시를 당하고 있으며 미국무성은 사태에 대한 발언권을 더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미, 장 총리 귀국바라>
「워커」 장군이 지휘하고 있을 동안에는 미 군사 고문 단장인 「파렐」 장군은 「워커」장군과 우리 나라 국방 장관 사이의 연락 임무만을 띠고 있었다. 「워커」 장군은 언제나 「파렐」 장군이 지휘나 명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그의 수하 장교의 임무가 오직 연락임무에 한정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었다. 「무초」 대사는 또 대통령에게 장면 총리가 귀국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면서 전보를 보내라고 제의했다. 대통령은 그에게 장 총리가 급히 돌아와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가 돌아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고 말했다. 우리는 왜 「무초」대사가 장면씨의 귀국을 그다지 마음 졸이며 열망하고 있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무초」대사는 장면씨를 워싱턴에서 귀국시키려는 미국무성의 의도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기에는 너무나도 순진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미국에 나가면 귀국하려 들지를 않는데 그들은 국내가 이와 같이 긴박한 상황아래서는 그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면 총리의 자리에 임명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의 유엔 대표들이 국무총리나 외무장관이 국외에 나가 국내의 행정부직에 없음을 비난한다고 들먹이고 있다.

<청탁·압력에 시달려>
이 비난은 필리핀 행정부가 그 외무장관을 언제나 외국에 나가 연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진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또 장면 총리가 외무장관의 자리를 겸임하도록 하라고 제의했다. 공교롭게도 임병직 외무는 귀국하라고 했을 때 돌아오지 못했는데 대통령은 그가 귀임 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평이 낫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행하게도 임 장관을 대통령에게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 장관은 미국인들에게 우리의 실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그것을 공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라를 구하려고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지금 일본으로 밀항하여 해외도피를 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엄중히 처벌할 것이며 제주도 피난 행을 금지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외무부에는 일본행 여권 신청자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대부분 권력층과 부유층의 인사들로 이들은 그럴듯한 여행 이유를 만들어 오지만 외무부에서는 공무 이외의 해외여행은 일체 허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더욱 굳히고 있다고 외무부의 유태하 정보국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외무부의 여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와 직원들이 개인적인 청탁과 압력에 무척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관용여권 이외에는 일체 접수조차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공표해야겠다고 유 국장은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은 유 국장에게 서애 선생 후예답게 소신대로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국민 도의 타락 개탄>
임진왜란 때 명재상으로 임금님에게 명장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천거했고 7년 전란을 치르는 과정과 자기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징비록』이라는 수기를 써서 책으로 남긴 훌륭한 애국 공신 문충공 유성룡의 직계자손인 유태하씨는 일제하에 비록 학교는 많이 못 다녔지만 애국심과 긍지가 있는 젊은이라고 대통령은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쌀값 오르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김석관 교통부 장관이 경북지구의 양곡을 조속한 시일 내에 수송 완료하기 위해 화차 9백량을 확보하여 사용할 예정이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보고해서 나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ECA (경제협조처)의 피난민을 위한 구호품인 담요와 부인용 및 의류소금과 백미가 각지에 배정되어 수송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의 구호 물자 배급으로 전재민들의 고생이 다소라도 덜어지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묘령의 처녀 2명이 부산역에 있는 화차에 숨어 들어가 전선으로 보낼 물건을 훔치다가 철도 경비원에 발각되어 경찰에서 문초를 받고 있다고 오늘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이두처녀는 작년 12월29일부터 화차에 잠입하여 물건을 절취해 왔는데 지난 2일 경비원에 붙들렸을 때 생활난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를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었는데 또다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건을 훔치다 들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이 이야기 듣고 얼굴이 어두워지며 국민도의의 타락이야말로 중공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라고 우려했다.

<굶을 줄 알아야 선비>
우리 민족이 외적의 침략을 받아 전란을 겪고 어려움을 당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용기와 슬기로써 이러한 고난을 극복해 왔으며 현명한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통해 민족의 얼과 역사를 지켜 왔다고 대통령이 말한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대통령은 끼니를 굶기도 했던 소년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봉황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죽순 아니면 먹지 않는다』 『굶을 줄 알아야 훌륭한 선비다』 『콩 한 조각이라도 사이좋게 나누어 먹어야한다 는 가정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해외에서 그토록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파란 많은 일생을 지내 오는 동안 한국인 특유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굽힘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극기의 정신을 슬기로운 한국의 부모들이 가정 교육을 통해 자기 자녀들에게 심어주어 건전한 국민 도의가 지켜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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