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안주 비판 속 「좌표 설정」 몸부림|창당 3돌 맞는 민한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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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한당이 17일로 창당 3주년을 맞는다. 제5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정치권의 비판 수요 담당 세력으로 만들어진 민한당으로서는 12대 총선거와 2차 해금을 앞두고 야당으로서의 좌표설정과 위치 확보에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창당 당시의 여러 복잡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민한당은 지난 11대 선거에서는 국민으로부터 일단 제1야당으로 인정되었다.
그 결과 원내 81석이라는 의석을 갖췄고 지난 3년간 제1야당으로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왔다. 당 후원회가 생겨나 당의 재정이 어느 정도 확립됨으로써 특정인의 돈줄에 매달리지 않는 정당이 됐고 당권파, 비당권파란 말은 있어도 과거와 같은 뚜렷한 당내 파벌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원내 투쟁, 대 정부 투쟁에서도 민주 회복, 정치 회복이 고창되지만 그 방법은 대화와 타협에 의지했다. 외형상의 건전 야당상은 어느 정도 정착돼 가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아직 피조 콤플렉스가 완전히 가셔진 것은 아니다. 많은 야당 정치인이 정치 풍토 쇄신법에 묶여있는 상태에서 새로이 원내에 진출한 의원들의 과거 경력이 반드시 야당적이지는 않고, 또 실제 원내 활동도 야당적이 아니란 얘기를 듣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작년의 전당 대회도 미리 짜여진 스케줄대로 일사불란한, 종래 야당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당내의 비동질성, 야당의 위치에 관한 인식의 불일치 등이 오늘의 민한당의 성격이자 고민이 되고 있고 것은 종종 민한당의 위약점으로 나타나곤 했다.
작년 김영삼씨 단식 사건으로 장외의 바람을 거세게 받고 6월 국회를 공전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내부적 갈등도 그때뿐이고, 의원 총회에서 소장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당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내부적 갈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민한당의 지난해 정책 실적을 볼 때 고문 방지에 관한 특가법의 개정, 개혁 입법인 국회법 개정 등 몇 가지 중요한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민한당이 이른바 민주화의 본질적인 문제로 제기했던 지방자치제의 실시, 언론기본법 개정 등 중요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과도, 투쟁 노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정부·여담의 정치 목표 속에 제한돼있는 대야당관의 기본적 제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벽을 뚫기 위해서는 제1야당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제돼야 하지만 이 본질적 문제에 있어서도 당 내건 센서스가 항상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실에 안주한다는 비판도 들었고, 민주화를 고창한 연후에는 자괴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이질적이었던 많은 신참 의원들이 지난 3년간의 활동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야당의 역할을 체득하게 됐고 그로 인한 등질의 폭이 넓어져가고 있음은 인정해야할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요소는 과거의 야당상과 재야라는 외풍이다.
별로 크지 못한 국회내의 정치의 테두리 안에서 민한당이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크지 못함에도 민한당은 이같은 기대와 비판을 견뎌야 한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스스로 인명론을 내세워 체제 내 안주를 자성하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재야와의 문제에 부닥치면 색깔이 퇴색해 버릴 수밖에 없는 고민을 안고있다.
이 같은 내전 고민 속에서 당내에서는 당 지도부의 허약함을 비판하면서 「제2의 창당」을 주장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한당은 지난번 1차 해금자를 대상으로 영입 교섭을 폈고 유치송 총재는 『과거의 야당동지들이 모두 들어와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자』고 재야에 대한 적극적인 영입신호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의 2차 해금의 폭에 따라 민한당에는 한 차례 진통이 일어날 것이다.
또다시 야당의 정통성 시비가 일 것이고 만약 강력한 신당이 출현할 경우는 상당한 시련을 겪을 소지도 있다.
그러나 민한당이 지난 3년 동안 굳힌 제1야당으로서의 이미지는 크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제5공화국의 기본적인 정당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이 준수되는 한 민한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위치를 계속 확보해 나갈 가능성은 앞으로도 크다.
이미 재야의 미 해금 인사 중 상당수의 중진들이 민한당에 입당할 의향을 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한당이 2차 해금 이후 재야를 수렴하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에 성공한다면 정치의 영역의 확대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새로운 정치 기대를 수반할 것이다. 그와 같은 기대를 자각해 그 과정을 어떻게 현명하게 수행해 나가느냐가 창당 3주년을 맞는 민한당의 과제일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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