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 「원인들」, 보고만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게 무슨 창피인가. 한번만 봐도 전율할 호텔 화재 참사가 번번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드러나는 문제들이 어쩌면 그리 똑같은가.
우리는 이런 화재를 볼 때마다 원인 분석과 예방책, 대비책 등을 소리 높여 운위하지만 결국 만사 휴의다. 화재에 대한 경계심이나 방비만큼 완벽하게 무시되고 방치되는 일도 드문 것 같다.
크고 작은 화재를 숱하게 보아왔지만 그 발화 원인은 하나같이 화기에 대한 취급 부주의이다. 게다가 피해 확산 이유를 보면 건물 자체의 화재 예방, 대비 시설의 미비이다. 즉 건물주의 관리자의 탈법과 이것을 적당히 눈감아준 관계 당국자의 직무 유기가 근본에 도사리고 있음을 예외 없이 볼 수 있다.
14일 발생한 부산 대아 호텔 화재 원인도 석유난로 취급 잘못이라는 하찮은 것이었다.
여기서 「하찮다」는 표현은 취급자가 조금만 주의를 했더라면 이 엄청난 재앙은 아예 없었으리란 아쉬움 때문이다. 71년의 서울 대연각 호텔 참사를 비롯, 작년 10월의 마산 고려 호텔 화재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화재 원인은 가스나 난로 사용상의 부주의, 누전이 아니면 담뱃불에 의한 재난이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대아 호텔 화재에서 38명이 사망하고 80명이 중경상을 당한 큰 피해를 초래한 것은 대비시설의 불비 때문이었다.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이 호텔이 최근 소방 점검에서 화재 탐지 시설과 옥내 소화 설비가 미비하고 카피트나 커튼 등 내장재의 내화 처리가 전혀 안돼 있어 시설 개선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호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가연성 물질들에 의해 삽시간에 불이 번지고 여기서 뿜어내는 유독 가스는 인명 피해를 확대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작동도 하지 않고 모양뿐인 스프링클러, 닫혀 있는 비상구,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방화벽과 방화문 등 재난의 요소를 빠짐없이 갖춘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1백명이 넘는 투숙객을 받아들이고 헬드 클럽 영업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우선 업자의 직업 의식과 양식의 부재이다. 이 모든 위험 요소를 잔뜩 가진 체 영업을 해왔다는 것은 『설마 불이야 날 것인가』하는 단 하나의 기대에 모든 것을 말기고 방화 설비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고 안전을 무시한 것이다. 『설마』 보다는 『만의 하나라도 불이 난다면』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이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을 평소에 마련해두는 기본 자세를 호텔이나 대형 건물주들은 갖추어야만 하겠다. 이러한 자세는 개인 주택도 예외일 수 없다.
목전의 이문에만 눈이 어두우면 이러한 충고가 들릴 리 없다. 그래서 당국의 감독과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법규가 정한 기준 설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엄청난 참사의 가능성을 빤히 눈앞에 보면서도 버젓이 영업을 하도록 한 것은 당국자의 직무 유기이거나 업자와의 유착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혹도 갖게 된다.
화재 예방과 소방 시설이 형편 없는 업소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고 실제로 화마의 참변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겠는가 철저하고도 엄격한 예방 점검과 단속에 추호의 묵인이나 예외의 인정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접객업소 종업원들의 안전 의식과 재난 대비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대아 호텔의 경우 불이 나자 종업원들은 투숙객의 안전은 생각지도 않고 모두 자기들만 대피했다고 한다. 평소에 민방위 훈련이나 소방 훈련을 철저히 해두었더라면 직업적인 사명감이 좀 더 민첩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매연과 유독가스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질식한 희생자수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 각 개인의 불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높이고 업주의 직업 의식의 각성, 그리고 관계당국의 빈틈없는 단속지도만 있으면 화재 예방은 결코 힘드는 일이 아니다.
다만 이들 모두가 참담했던 교훈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설마』라는 막연한 기대에 매달려 방심하며 눈앞의 이념과 편의에만 집착하는 타성에 빠져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