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콜드로 번들거리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 보며 중년으로 접어들어도 아름다와지고 싶은 본능은 남아있구나 생각해 본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속절없어 생기는 눈가의 잔주름과 거칠고 미운손등을 손질하며 아직 귀가 않은 그이에게 투정을 부려본다.
마침 전화가 운다.『여보세요?.』
『응 난데, 나 오늘 조금 늦을것 같단 말야. K씨가 부친상을 당해서‥‥.』
부산하면서도 짧게 자기의 늦는 사유를 알려준 그이의 전화가 포근한 마음의 여유를 준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몇년전에 읽다만 「모파상」의『여자의 일생』에 푹 빠지고 말았다.
남자들의 이기적인 교활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고 사는 여자의 일생을 안타까와하며‥‥.
숨통 막히는 구절의 실마리가 느슨해지는 부분이 지났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이와 시계를 의식했다.
시계는 자정을 넘어 2시에 가까와지고 있었다.
밤늦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짝 소리와 택시의 클랙슨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까 본 책 속의 주인공「잔」을 생각하노라니 잠은 천리만리 도망가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곧 그이가 가끔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지난날의 생활 속에서 불가항력의 곤경에 부딪쳤을 때 괴로움을 자기가 더 많이 지고 나를 감싸주던 그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나 혼자만이 느끼는 오붓한 행복이 아침의 태양처럼 신선하게 내 머리를 식혀준다.
내일 아침이면 멋적게 들어올 그이에게서 쓴 담배냄새가 내 코를 찌를 것이고 꼬기작거려진 아랫바지의 주름은 막내보다 더 짓궂은 개구장이로만 보여 나는 또한번 어이없는 웃음을 웃어야만 될테지.
설령 어젯밤 그이가 나를 속인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어리석은 여자로 둔갑해 말없이 그이와만 통하는 웃음으로 비싼 관용을 한번쯤은 베풀고 또 속아주어야 하겠지.
(충남 예산군 예산읍 단교리3구 117의2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