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로마자 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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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5년만에 비로소 확정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그 동안 난맥을 보여온 로마자 표기 방식이 일단 통일되었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광복이후 40년 동안 정향 없이 표류해 오던 우리의 어문정책이 한 단계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문교부의 이번 새 로마자 표기법은 「매큔-라이샤워」(M-R) 방식에 일부 불 합리를 보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마자 표기법의 통일확정이라는 결정은 그 동안 명멸했던 근 42개의 표기방식을 통일, 정리했을 뿐 아니라 현재 통용되고 있는 두 개 공식 표기법의 혼선을 제거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문교부는 교과서 등 각종 간행물에서 문교부(MOE)방식을 썼으며, 반면 건설부와 서울시는 교통표식판·안내판 등에 매스컴 등은 그 절충식을 써야했다.
그런 혼란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새 로마자 표기법은 우선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 점에서 문교부가 79년이래 국어 심의회로 하여금 개정 시안을 만들게 하고 학술원이 다시 4년여에 걸쳐 이를 다듬어 정부부처간 협의 관정을 거쳐 확정한 노고도 치하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 국어 로마자 표기법도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표기방식의 결정보다는 사용의 실제적 통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59년에 문교부가 「한국 로마자 표기법」을 만들어 공포했을 때 그것은 엄연한 우리 정부의 통일안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정부의 표기법은 통일된 사용 노력이 부족했던 관계로 결국 일반사회 뿐만이 아니라 정부부처간의 일치된 사용조차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정부가 나라의 대본이 되는 어문정책의 결정에서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어야 할 뿐 아니라 일단 결정한 뒤에는 일사불란하게 사용을 확대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져야겠다.
그 점에서 둘째는 로마자 표기법이 일단 정해지기는 했지만 정부가 너무 서두르고 자신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 짙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나는 새 표기 안을 88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사용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이를 보완하겠다고 하는 문교부 자신의 발언이며 둘째는 이것이 외국인들의 읽기 편의에 중점을 두어 표음주의 원칙을 택했다고 한 점이다.
82년 말에 한국 학회가 새 로마자 표기법 개정추진 움직임에 맞서 문교부에 건의했던 주장들도 감안되어야겠다.
그 때 한글학회는 말과 글에 관한 정책은 함부로 바꾸지 말아야하며 MR방식은 불필요하게 복잡할뿐더러 우리말의 음운체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우리말의 어형과 발음을 오준 할 수 있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그 건의의 정부를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나라의 어문정책에 대한 문교행정의 확신과 신중성은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
셋째는 새 표기법이 반달 표나 어깨점 등 부호를 붙이게 된 점을 재고해야겠다.
외국인 특히 영어사용자에게 표준을 둔다면서 발음기호도 아닌 문자에 부호를 덧붙이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새 로마자 표기법이 일단 확정 공포된 이후에는 그 사용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거리에서 흔히 눈에 띄는 도로표지판에서부터 하루 빨리 새 표기법으로 통일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되어야겠다.
각급 교과서와 출판물을 새 표기법에 따라 제작, 배포하는데도 정부와 사회의 일치된 노력이 있어야겠다.
정부와 온 국민이 맞춤법·표준말·외래어 표기법 등 나머지 어문정책의 통일과업에도 이제부터 힘을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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