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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에 담은 환경사랑, 살포시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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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계 곳곳을 가봤지만 우리 보자기만한 무공해 포장법이 없어요. 조각천을 아름답게 재활용한 미감과 지혜는 또 어떻고요.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 보자기를 21세기 환경운동에 한국 대표선수로 내놓으면 1등 감인데 누구 앞장설 사람 없을까요."

허동화(80.사진(左)) 한국자수박물관 관장은 보자기 예찬론자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우리 옛 보자기를 일찌감치 모으기 시작해 보자기 박사가 됐고 보자기 전도사로 뛰고 있다. 그가 수집한 보자기와 전통 자수 수천점은 세계 유명 박물관이 초대 목록 1위로 올려놓을 만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그를 일러 "문화론자, 여성론자, 환경론자 예술가"라 부를만하다. 허 관장 자신도 "보자기에 깃든 정신을 현실로 끌어내 환경운동가로 변신하는 참"이라고 말했다.

23일부터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 지하 1층 컨템포 갤러리에서 열리는 '새와 같이 살자'는 '환경운동가 허동화'를 선언하는 첫 전시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상 생활과 노동에서 쓰던 여러 도구를 모아 환경 설치미술로 살려냈다. 허 관장 말을 빌리면 "돈 가치는 없으나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장식품이다.

세월의 때가 거무튀튀한 문짝에 색동 천 몇 장을 발라놓으니 현대 추상회화 저리 가랄 정도로 멋진 그림이 됐다. 나무 김칫독 뚜껑에 소 방울을 곁들이니 사람 하나가 탄생한다. 가마 근처에서 구한 깨진 도자기 파편을 몇 개 얹은 창틀에는 '꽃이 되고 싶은 사금파리'란 제목이 붙었다. 맷돌 받침.고무래.갈퀴.써레…뭣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올해 나랑 아내가 결혼 50주년인데 신혼 때 장만한 침대를 아직 쓰고 있어요. 아는 이들이 그 침대도 전시에 내놓으라며 웃는 거야. 우리 집은 뭐든 모아서 새롭게 바꿔 쓸 줄만 알지 버릴 줄을 몰라. 여든 살 평생 습관이 이 정도면 환경운동가로 나서도 되지 싶은데…."

그는 "지금 우리가 보자기 쓰기 운동을 펼치면 그 보자기가 백 년 뒤에는 문화재요 보물로 대접받지 않겠느냐"고 했다. 조선시대 어머니 마음을 이어 보자기 쓰기로 현대의 환경운동을 일구자는 허관장의 목소리가 보자기마냥 곱다. 02-515-511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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