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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1994년-(5) 정치인 이종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994년0월0일. 아침6시.
이종찬 의장-특정직위와 관계없지만 집권당 원내 총무를 오래 지냈고 4선 의원이 된 그는 그만한 위치에 가 있을 것이다-은 기침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에 눈을 떴다. 그는 습관처럼 컴퓨터로 작동되는 수상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수상기에서는 지난 밤 동안에 있었던 국내외 주요 뉴스-특히 정치·외교 문제가 중심이 되는-와 하루의 스케줄이 자막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천지당 대통령 후보에 가나다씨 지명』이 국내 뉴스의 톱으로 올라있다. 천지당은 제1야당이고 가나다씨는 현재 당수로 있는 명망 있는 정치인이다.
이 의장은 무선전화기를 들고 6번키를 눌렀다. 6번은 제1야당 당수와의 직접 통화번호였다.
『정말 축하합니다.』
『다 이 의장 덕분이지요.』
『야당의 후보지명 페어플레이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입니까. 두고 보십시오. 이번에는 꼭 정권교체를 이루고야 말겠습니다.』
『우리 여당도 승패보다는 깨끗한 선거에 더 역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가나다씨의 지명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탁월한 경제이론의 소유자인 그는 여당의 중요한 정책에 야당의원으로서 동조했던 일이라든가, 자신과는 의회활동을 통해서 국가관이나 세계관의 충돌이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터다.
지금의 의회가 여야의 구별 없이 정책대결과 대화의 장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가나다씨와 같은 민주적 사고에 투철한 야당지도자의 힘이 컸다.
『야당후보지명에 따른 당내 대책회의』-. 오늘의 주요 일정을 머릿속에 넣고 1995년 벽두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전략을 계산한다.
「GNP성장에 따른 공해산업의 추방과 기간산업의 국유화」란 이대공약을 야당이 이슈로 삼고 있을 뿐 큰 정치적 논쟁이 없는 정책대결의 선거여서 여당으로서는 새롭고 매력 있는 구호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상오9시 집을 나선다. 동안의 그도 반백의 머리가 됐지만 건강만은 자신이 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지하철을 탄다. 서울의 공기를 깨끗이 하자는 운동에 앞장을 서서 평상시에는 차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의사당에서 그는 간부들로부터 국회운영에 관한 보고를 받고 업무를 지시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은 아침부터 낚시꾼이 보이고 맑은 공기를 가르며 수상스키가 한창이다. ㄱ그룹에서 지은 1백10층 한국의 경천루가 구름을 꿰뚫고 서 있다.
ㅈ신문에 쓰고 있는 정치비화를 공개하는 『지금은 말할 수 있다』의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도서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서실 안은 초선의원들이 청바지 차림으로 책을 읽고 또는 글을 쓰고 있다.
도서실을 나오는데 비서가 급히 달려와서 쪽지를 전한다. 제네바 IPU회의에 참석한 의원으로부터 북한당국과 접촉한 전문보고다. 김일성 사망후의 북한은 세습으로 후계자가 됐던 김정일이 무너지고 수정주의 파가 집권한 이후 계속해서 남북간의 접촉이 시도되고 있다.
-그렇지, 내년 선거의 캐치프레이즈는 통일이 좋겠다. 「라」의장·「마」의장도 참석하는 대책회의에선 이 얘기를 해야지-.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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