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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집단행동 처벌 검토했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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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일 청와대 국무회의장에 들어선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있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방미 후 첫 국무회의였다. 盧대통령은 각료들에게 "이런저런 새로운 일로 수고가 많았다"며 "그러나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회의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로 인한 물류대란, 한총련의 5.18 기념식 기습시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추진에 따른 전교조의 집단행동, 새만금 사업 추진 논란 등 국정 전반이 기강해이와 이익집단 간의 갈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상황에서였다.

盧대통령은 이날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는 집단행동에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윤덕홍(尹德弘)교육부총리가 NEIS 시행과 관련, "전교조의 연가투쟁으로 이념논쟁이 증폭됐다"며 "갈등이 증폭돼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고 보고하자 盧대통령은 "연가투쟁 인원이 몇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다.

尹부총리가 "1천5백~2천명쯤 된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그들을 중징계하면 교사 숫자가 부족해지느냐"고 되물었다. 분위기가 일순 가라앉았다고 한다. 尹부총리는 "초등학교는 교사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盧대통령은 바로 "연가투쟁으로 교실에 안 나오면 어떤 법적 징계가 가능한지 검토해 봤느냐" "형사처벌과 관련해 관계부처와 협의해 봤느냐"며 사법처리 등 강경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盧대통령은 "이 정권은 권력을 찬탈한 부적절한 정권이 아니고 여론조사에서 아직도 60~70%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만으로 국가의 의사결정 절차 등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시도는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대선 당시 우군으로 평가됐던 전교조에 대해 盧대통령은 "그 단체가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정부에도 그만한 노력을 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국가인권위가 "NEIS의 일부 영역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이를 제외하고 시행하라"며 전교조 측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한 데 대해서도 盧대통령은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인권위 권고 때도 아무런 시비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좀 과한 단정적 권고"라고 지적했다.

장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은 "전교조는 위험하다기보다는 교단 자성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순기능이 많았다"며 "좀 고려를 해달라"고 말했다.

반면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은 "전교조 지도부가 80년대 중반의 권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반미 등과 관련한 일방적.편향적인 교육이 외교부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지은희(池銀姬)여성부 장관은 "전교조가 80년대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파트너십을 갖는 게 좋다"고 재반박했다.

盧대통령은 이날 불법적 집단행동에 대한 엄정대응과 함께 최종찬(崔鍾璨) 건설교통부 장관의 사의표명에 대해서도 "개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총련 시위에 대해 책임자보다는 행위자 쪽의 문책 강도를 높인 것이 연장선상이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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