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1) 제80화 한일회담(110) 회담재개 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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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측의 일방적인 회담개최 연기통고에 대한 이대통령의 노기띤 질책을 받고 나온 조장관과 나는 수습책을 여러모로 궁리해봤으나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조장관은 이대통령의 지시대로 일본어부들의 석방을 중지할 경우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라고 말했으나 나는 그래봤자 별 이득이 없다고 설명했다.
즉, 일본어부들의 석방을 중지하면 당장은 「기시」수상정권에 타격을 주는 효과를 낳을것이다. 5월22일로 예정된 일본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적어도 서부일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게될것이다.
그러나 그럴경우 일본은 불법입국 한국인 중 북한송환을 희망하는 53명을 북한에 송환하는 보복책을 강구할것이며, 이는 북한을 크게 고무하는 사태로 진전될것이다. 그 결과 일·북한관계의 개선을 촉진시킨다면 이는 우리가 바라지 않는 엉뚱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그러니 일본정계에 친한로비망을 구축한 유태하공사에게 지시해서 그들을 움직여 이대통령의 노기도 풀고 회담도 곧 열게 하는 방향을 강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기시」수상이 58년초 특사파견 또는 자신의 방한을 여러차례 흘려 우리측의 반응을 떠볼 정도로 대한 관계정상화에 열성을 보였던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유공사를 통해 「기시」수상의 결단을 촉구하는 길 외에는 이 사태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조장관도 내 의견에 동조해서 나는 유공사에게 이상과 같은 점을 설명하면서 「기시」수상을 움직이도록 훈령했다. 특히 3월26일이 이대통령생신이니까 이 점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공사는 「기시」수상의 심복인 「야쓰기」(시차일부)시를 만나 우리측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이를 풀길은 「기시」수상의 결단뿐이라고 촉구했다. 「야쓰기」씨는 일본이 그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은 법무성과 외무성 강경파 관료들의 완강한 주장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기시」수상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야쓰기」씨는「기시」수상에게 이대통령의 83회 생신에 친서를 보내도록 권고했으며 「기시」수상도 회담 연기를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터라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따라 유공사는 3월22일 「기시」수상의 사저에서 「기시」수상과 2시간여 비밀회담을 갖고 회담의 무조건 개최등에 합의해 그 뜻을 친서에 담기로 했다. 친서는 동석했던 「야쓰기」씨가 기초했는데, 외무성은 「야쓰기」씨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불쾌감을 공공연히 발설, 일본언론이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이대통령은 3월24일 「기시」 수상의 친서를 휴대하고 귀국한 유공사로부터 친서와 「기시」수상의 태도를 전달받고 노여움을 풀었다.
「기시」수상은 친서를 통해 이대통령의 생신을 축하하고 아시아 선린외교를 추진하려는 일본외교방침을 명백히 한 다음 『일본은 종래의 주장에 구애됨이 없이 한일간의 우호관계 수립에 노력하고 싶다』고 간곡하게 말했다.
유공사는 이대통령에게 『「기시」수상은 회담을 4월중에 무조건 열자고 제의했을뿐아니라 가능하면 자신이 이대통령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양국현안을 협의할뜻을 비쳤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대통령은 나를 돌아보며 『김차장, 이 사람은 한일회담에 뜻이 있는것 같구먼』 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기시」수상의 방한은 아직일러』하고 말했다.
유공사와 나는 『그렇다면 그의 특사가 오는것은 어떻겠느냐』고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았다. 유공사는 일제지배에 대한 사과겸 앞날의 선린우호를 다지는 첫 걸음으로 「기시」수상이 특사파견을 여러차례 언급했던점을 설명했다.
이대통령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으나 이 때는 「기시」수상의 친서내용에 영향을 받아서였는지는 몰라도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이대통령의 심경변화는 3월27일 한국전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노련한 AP통신 특파원 「렐먼·모린」과의 회견에 그대로 나타났다.
『나는 「기시」수상이 회담을 재개할 용의를 가지고 있는것으로 생각한다. 「기시」수상은 진지하며 그는 우리가 이때껏 교섭해오던 어떤 일본 외교관들 보다낫다.』
이대통령은 며칠후 유공사편에 「기시」수상에게 보낸 회신을 통해 4월중 회담개최는 물론 특사파견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밝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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