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군 사건이후 중공의 대 북한 정책 악화 여부를 타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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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한 미 행정부 고위관리는 조자양 중공 수상의 방미 중에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가 논의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 문제가 「중요 의제」로 취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한반도의 긴장완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공이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덧붙여 북한의 랭군 만행이 있은 직후인 지금 분위기는 긴장완화를 위한 어떤 이니셔티브를 취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미국 관리의 입장은 랭군사건 직후에 있은 미 국무성의 논평이나 지난 11월 「레이건」미 대통령의 방한 중 국회연설 내용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관된 입장을 놓고 볼 때 이번 조 수상의 방미중 이 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루어 질 것이라는 한 미국 행정부 관리의 말은 중공 측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새로운 제의를 제시할 경우 이를 관심을 갖고 듣겠지만 미국이 스스로 어떤 제의를 할 가능성은 없음을 뜻하는 것 같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중공의 등소평은 지난 9월 「와인버거」미 국방장관이 북경을 방문했을 때 흥미로운 발언을 했었다. 등은 그때 중공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미국과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넌지시 비쳤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등은 이 문제에 관해 북한과 이야기하리 던 과거의 입장에서 약간 돌아서서 미국과 논의할 용의를 비친 것이 중공태도의 변화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었다.
그러나 문제는 등의 이런 제의가 랭군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나왔다는 점이다. 중공은 랭군사건이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 점이 이번 조의 방미중 한반도 문제가 거론될 경우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공당 총서기 호요방이 랭군사건 후인 지난 11월 동경을 방문했을 때 일반적 테러리즘을 비난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중공지도층이 이 사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불만의 표시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중공 측 의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워싱턴의 아시아 학회가 조수상의 방미를 앞두고 발표한 한 자료는 이 점에 대해 『한반도에 관해 미-중공간에 말이 통하면 그것은 이번 미-중공 정상회담 중 큰 사건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레이던」행정부는 다른 모든 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공과의 관계를 상호이익의 관점에서 뿐 아니라 대소 전략상의 유대관계로 다루려 해 왔다. 그러나 중공은 이와 같은 포괄적인 관계보다는 미-중공간의 쌍무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공의 4대 현대화 계획에 도움이 될 경제관계에 중점을 둬왔다.
이런 뜻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수출 문제로 최악의 상태에 있던 미-중공관계가 「슐츠」국무장관의 중공방문(83년2월)으로도 호전되지 못하다가 지난 5월 「볼 드리지」상무장관의 북경방문으로 하나의 전기를 맞게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볼 드리지」장관은 이 방문중 미국이 대 중공 기술이양문제에 있어서 중공을 소련과 동급인 「P·카테고리」로부터 유고·인도 등 「우호적 비동맹국」들과 동급인 「V·카테고리」로 격상시키기로 했다고 통고함으로써 중공의 감정을 무마했었다.
이를 계기로 「와인버거」미 국방장관의 북경방문(83년9월)뿐 아니라 조 수상의 방미 및 「레이건」대통령의 중공방문(84년4월)길이 열린 것이다.
「레이건」행정부 아래서 양국 관계가 겪어온 우여곡절 때문에 조 수상의 방미를 그 자체로서 미-중공관계가 극적으로 호전된 증거로 풀이하기보다는 앞으로의 관계를 결정짓는 열쇠로 보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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