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문화계 우리는 무엇을 했나|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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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내영화계가 올해만큼 불황과 퇴보속에 허덕인적도 일찌기 없었던것 같다.
70년대 초반부터 계속되어온 영화계의 하향곡선은 올 들어 더욱 급커브를 그리며 떨어져 내려갔다.
서울시극장협회가 최근 조사한 서울 개봉관의 흥행실적을 보면 전체 관객이 지난해보다 5%가량 줄어들었다. 하지만 외화관객은 오히려 11%나 늘어난 반면 국산영화관객은 30%나 줄어드는 한심한 현상을 보였다.
올해도 국산영화가 88편이나 만들어졌지만 한마디로『볼 것이 없었다』는 셈이다.
벗기기 작전도, 액션물도, 이제는 모두 관객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갔다. 관객은 한번이상 속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 셈이다.
당위성이 결여된 어설픈 주제, 볼품없는 영상, 히트영화에 대한 타성적인 모방등 국산영화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 저질영화들이 양산된 한해였다.
88편의 영화가운데 10만명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는 15만명을 넘어선『적도의 꽃』과 지난 정초에 개봉됐던 어린이물『신 서유기』(12만6천명)등 2편이 고작이다.
10만명 이상을 돌파한 영화가 81년에 8편, 82년에 4편이나 됐던데 비하면 올 영화계가 얼마나 불황이었나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관객을 1만명도 끌어들이지 못한 영화도 무려 9편이나 된다.
관객동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우수작이라고 내세울만한 수준급의 작품도 찾아보기 어려웠다.「제대로 만든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었던 것은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은『물레야물레야』를 비롯해『적도의 꽃』『안개마을』『불의 딸』『바보선언』『일송정 푸른솔은』정도다.
올 영화계가 이처럼 흥행에서나 작품성에서 저조했던 원인은 영화법개정에 대한 활발한 논외와 추진이 영화제작자들의 불안심리와 제작의욕상실을 가져왔던 것을 가장 먼저 손꼽을수 있다.
언제 독과점의 특권을 잃을지 모르는 마당에 전력을 기울여 제대로 작품을 만들려는 영화제작자는 없었던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올해의 외화는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국산영화를 외면한 관객들이 외화로 몰려든 때문이다.
지난해 외화의 흥행톱은『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로 가까스로 40만명을 넘어섰으나 올해는『사관과 신사』『007 유어 아이즈 온리』가 각각 50만명을 돌파하는 호황을 보였다.
이외에도『브레드레스』『SAS특공대』등도 30만명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등 한산한 국산영화계와 엄청난 대조를 이뤘다.
내리막길인 국산영화계에 그나마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지난2월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김혜자양이『만추』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점이다.
이는 지난 74년과 76년 파나마국제영화제에서 김지미 최민희양이 여우주연상을 받은지 7년만의 경사였다.
또 연기생활 8년만에 올해 대종상여우주연상을 받은 장미희양과 올해 9편의 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종상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오르는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원미경양이 영화배우로서 자리를 굳힌 점도 주연급 연기자가 부족한 우리영화계 현실로는 큰 수확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대종상남우주연상을 수상, 본격적인 수준급 연기자로 부상한 안성기군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다. 이밖에 신인배우로서는『일송정 푸른솔은』의 이보희양,『사랑만들기』의 최선아양의 등장이 주목됐다.
과연 국산영화계가 이같이 깊고 깊은 불황과 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날 길은 없을까.
결론은 늘 마찬가지로 내려졌다. 외면적으로는 현행영화법이 개정되어야하고 내면적으로는 영화인들의 각성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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