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3》 제80화 한일회담(102)-일의 대한 재산청구권|김동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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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대통령의 재교섭 훈령을 받은 김대사는 본인의 표현대로「염치 불구하고」다시「기시」일본수상을 만나 정치적 절충을 벌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기시」수상은 그의 방미전에 합의본 선이 일본측에서 양보할수 있는 최대의 선이라고 못박고, 그선에서 일부 자구의 배열을 달리한다면 가능하지만 본질적 내용의 수정에는 응할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기시」수상은 이미 합의본 내용만해도 자민당 내부는 물론 일부 각료들로부터 지나친 양보를 했다고 공박을 듣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김대사는 57년7월18일 이대통령에게 보내는 보고와는 별도로 나에게 친전을 보내『대통령에게 보낸 보고서와 같이 일은 딱하게 되어가는데 수정이라야 문구수정 정도 이상은 아니될 것입니다. 일본측은 불성공인 경우에 대비해 딴 방책을 입안하고 있는것 같습니다』고 밝혔다.
이즈음「기시」수상은 내각을 개편, 겸직중이던 외상에 일본상공회의소 두취「후지야마」(등산애일랑)씨를 임명했다.
나중에 상술할 터이지안 이「후지야마」외상은 대한 강경론자였다. 김대사가 지적한「딴 대책」은 재일동포의 북송방안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후지야마」외상의 등장으로 한일관계가 한층 복잡하게 되는데, 어쨌든 양측간에 이것만은 관철시켜야겠다, 이것만은 결코 양보할수 없다고 버틴 내용은 다름아닌 일본의 대한 재산청구권 철회에 관한 부분이었다.
8개의 각종 합의문서·구상서·부속의정서·공동성명서 가운데 세번째에 해당하는 문서인 합의각서 제4항의 문제였다.
그 내용은 ▲우리측이 한국의 대일재산청구권을 본회의에서 다루며 ▲일본측도 이에 반대하지않고 성실하게 그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일본측은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 제4조(일본의 대한재산청구권 처리조항)의 해석에 관한 미국측의 입장설명에 관해 한국정부도 미국입장과 같은 것이며, 나아가 미국측의 입장설명이 한일 양측의 재산권 주장 상호포기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일본측은 대한재산청구권 주장을 철회하고 본회담에서 한국만의 대일재산청구권 문제를 다룬다는 뜻을 이렇게 완곡하게 타협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그 완곡한 표현을 직설적으로 부연키 위해 그 조항 말미에『이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 한국의 대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재산청구권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한 문장을 삽입코자 지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비록 일본의 대한재산청구권 주장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이 부분의 추가는 결코 할 수 없다고 나왔다.
일본측은 우리가 한번도 우리의 대일재산청구권 규모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청구액수가 상상을 절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빠져나갈 방도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회담의 막후 조정자였든. 대표였든간에 일본인들은 우리측의 김대사나 유태하공사 또는 최규하총영사(외무장관·대통령역임, 국정자문위원장)를 만났을 때 누누이 지적한 점이 필리핀 또는 버마와는 달리 한국측이 한번도 그 액수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청구액수규모가 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을 때에는 이 합의문서의 완곡한 표현을 이용해 다시 그들의 대한재산청구권을 주장해 상쇄논리를 펴겠다는 속셈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박사로서는 이같은 일본측의 속셈을 간파하고 어떻게 해서든 이 점만은 분쇄해야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바 미국의 해석각서란 것이 모호하기 짝이 없어 어느 쪽이든 이를 자기 멋대로 유리하게 받아들이면 그만일 정도였다.
52년 제1차 한일회담때 일본측이 우리의 청구권 주장에 맞서 대한재산청구권을 느닷없이 주장했을때 우리측은 대일강화조약을 작성한 장본인인 미국측에 그 해석을 의뢰했던 일이 있다.
미 국무성은 우리측 요청을 받고 해석각서를 보내왔는데, 이를 본 이대통령은 그 특유의 안면경련을 일으키며 미국을 아주 심하게 매도했다.
미국의 해석각서 요점은 대일강화조약 제4조 B항, 주한 미군정청의 관계법령 및 처분에 의해 한국 관할내의 재산에 대한 일본인의 모든 권리, 권원 및 이권이 박탈되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일본이 대한재산권을 주장할수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또 한일양국이 미군정청에 의한 대한 일본재산 처분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가는 위의 해석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 이를 확대 해석하면 일본측도 대한 재산청구권을 주장할 수도 있는 듯이 부연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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